미국 내 전염병 확산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환자가 하루 20만 명 가까이 쏟아지고 있다. 사망자도 이달 들어 하루 2000명을 훌쩍 넘고 있다. 이 추세라면 11월에만 400만 명의 신규 감염자가 추가될 것이란 관측이다. 26일(현지시간) 기준 미국의 누적 확진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1320만여 명이다. 전체 인구의 약 4%가 감염됐다.
요즘 미국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몇 달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관공서 학교 쇼핑몰 등 어디에서도 마스크 없이는 다닐 수 없다. 마스크 없이 활보했다간 봉변을 당할 수 있는 분위기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겨울 추위가 다가오고 있는데 마땅한 백신이나 대량 보급이 가능한 치료제조차 없어서다. 더구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는 다음주엔 신규 확진자가 더 늘어날 것이란 게 보건당국의 예상이다.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90% 이상의 효과를 내는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나 대량 생산·배포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꼽히는 스페인 독감의 경우 1918년 초 발병했는데,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는 그해 겨울이었다. 학계에선 당시 독감으로 약 5억 명이 감염됐고 최소 20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북반구도 겨울 초입이다.
코로나 재확산과 맞물려 소매판매가 위축되는 등 실물 경제가 또 둔화할 조짐이다. 경제 봉쇄에 나서는 주(州)들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콜로라도 미네소타 펜실베이니아 오리건 등은 야간 통행금지 등 비상조치를 시행 중이다. 뉴욕 역시 식당·주점 등의 실내영업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주요 경제 지표인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지난주까지 2주일 연속 증가했다. 올 7월 이후 처음이다. 실업률도 다시 오를 가능성이 있다. 기업들의 추가 구조조정이 줄을 잇고 있어서다. 올 4월 14.7%로 급등했던 실업률은 지난달엔 6.9%로 낮아졌다. 미 중앙은행(Fed)은 연말 실업률이 다시 7.6%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올 초와 비교하면 여전히 두 배 넘는 수준이다. 팬데믹 직후 사라졌던 2220만 개의 일자리 중 지금까지 회복된 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고용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 및 소득 동향과 직결되는 핵심 지표다.
개인소득 감소 추세도 뚜렷하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10월 개인소득은 전 달 대비 0.7% 줄었다. 전문가 예상치(-0.5%)보다 나빴다. 이 때문에 미국인 580만여 명이 연말까지 거주지에서 쫓겨나거나 집을 압류당할 위기라는 게 인구조사국 조사 결과다. Fed는 최근 공개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경제 전망과 관련해 리스크가 불리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적시했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뛰고 있지만 실제 경제는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는 경고다.
월가에선 미국 성장률이 급락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투자은행 JP모간은 올 4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2.8%로 둔화한 뒤 내년 1분기엔 -1%로 급랭할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 역시 내년 1분기 전망치를 종전 3.5%에서 1.0%로 낮췄다. 올겨울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을 것 같다는 점에서다. 물론 유럽 역시 다르지 않다.
제약회사들의 발빠른 백신 개발 소식은 ‘일상 복귀’에 대한 희망을 심어줬다. 하지만 전염병 특성을 감안할 때 전 세계를 대상으로 대규모 접종이 이뤄지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오히려 인류의 느슨해진 방역 의식의 틈을 파고들지도 모른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학생들의 학력 저하 우려는 올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국적인 원격 수업이 채택된 후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온라인 강의가 이뤄지면서 수업의 질이 확연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최근 유럽중앙은행이 개최한 포럼에 참석해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집단은 학생과 여성, 자영업자(소기업 경영자)”라고 적시했다. 학생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실직 위기가 더 크기 때문이란 설명이었다. 자영업자들의 경우 장기간 일거리가 없어 삶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파월은 “코로나 백신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엔 너무 이른 시점”이라며 “백신이 보급되더라도 이미 타격을 심하게 받은 계층이 있기 때문에 별도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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