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서울시 공무원들의 '송현동 갑질'

입력 2020-11-29 18:23   수정 2020-11-30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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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사망 후 서울시는 늘공(직업 공무원)들의 세상이 됐습니다. 대화와 타협은 외면한 채 기관 이기주의에만 빠져 있어요.”

과거 서울시 정무라인에서 근무했던 현직 정치인들이 최근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다. 무슨 얘기일까. 이들은 대한항공이 보유한 종로구 송현동 부지 처리를 둘러싼 갈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서울시와 대한항공은 당초 지난 26일 국민권익위원회 주재로 송현동 부지 매각 합의안에 서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서명식을 하루 앞두고 문구를 바꾸자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면서 합의는 무기한 연기됐다. 서울시는 당초 합의했던 계약 시점과 매각 대금 지급 시점을 명시하지 말자고 말을 바꿨다.

송현동 부지를 둘러싼 서울시의 무리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엔 국민권익위원회 조정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송현동 도시공원 지정 안건을 기습 상정해 통과시켰다. 대한항공이 코로나19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절박한 상황임에도 서울시가 아랑곳하지 않고 갑질을 일삼는다는 비판여론이 거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의회에서도 서울시의 일방행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송현동 문제는 당초 대화와 타협으로도 충분히 매듭지을 수 있었다는 의견이 시 내부에서도 많다. 서울시장이기에 앞서 정치인인 박 전 시장은 송현동 사태가 ‘갑질’ 프레임에 휘말려 여론이 불리하게 흘러갈 것을 우려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의 대면협상을 추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고인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떠나 박 전 시장이 서울시 행정에 대화와 타협 문화를 심었다는 점은 내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이를 스스로 걷어찼다. ‘죽은 사람(박 전 시장)의 지시는 들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까지도 공공연히 밝혔다. ‘송현동 공원화’라는 명분에만 매몰돼 어려움에 빠진 대한항공의 상황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송현동은 민간이 사면 안 되는 땅”이라는 서울시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시 공무원들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명분을 앞세우면서도 정부기관인 권익위 중재조정까지도 무시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시장과 정무라인이 공석인 상황에서 ‘늘공’들의 일방행정은 어떤 견제도 받지 않았다.

행정은 정무적 판단보다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건 맞다. 하지만 갈등을 겪고 있는 상대방과의 대화나 타협은 행정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그 절차도 법에 명시돼 있다. 일방행정이 중앙정부의 조정까지 무시하는 기관 이기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서울시가 잘 보여주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는 아직까지도 5개월여가 남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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