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지는 중동 정세를 보면서 드는 걱정은 ‘외교의 실종’이다. 어디서나 매파가 득세하고 주도권을 쥐면 대화와 협상, 타협과 공존 목소리는 뒤로 밀리고 강경 대치와 ‘피의 보복’이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극한 갈등의 국제정치나 여야 무한 대립의 국내 정치나 다를 바 없다. 암살 테러와 그에 따른 물리적 충돌은 지구촌 모두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전통적으로 중동외교를 중시해온 바이든 미 차기 행정부의 부담이 더 커졌다.
이런 ‘원론적 고민’보다 더 절실한 위기감과 현실적 부담을 곧바로 안을 수밖에 없는 게 한국의 사정이다. 원유 수급 등 취약한 에너지 문제부터 구조적 아킬레스건이다. 불확실성이 고조될 때면 국내 금융시장도 국제경제의 변동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중동 정세에 따라 우리나라 산업과 금융의 긴장도가 함께 오르내린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에너지도 식량도 부족한 처지에서 수출에 기대는 개방교역국의 한계일 수 있다.
원자력발전을 제외하면 한국의 에너지자급률은 4%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세계 5위 원유수입국이다. 수입 석유의 70%가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과 걸프만을 거쳐 들어온다. 이 지역은 전 세계 원유 해상수송량의 3분의 1이 통과하고 있어 미국이 ‘국제 경찰’ 역할을 자임해온 곳이다. 하지만 미국은 근래 셰일혁명으로 자국 원유 수요를 거의 조달하고 수출까지 하면서 중동지역 안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드는 분위기다. 이 지역 안정과 평화에 대한 미국 역할에만 기댈 수 없게 됐다.
코로나 위기에 따른 수요 감소로 국제유가가 곤두박질쳤지만 아직은 ‘석유시대’다. 하지만 유가 동향은 여전히 예측불가이고, 선물시장과 파생상품의 발달로 금융과 비(非)금융의 경계도 더 모호해졌다. 산업에서도 금융에서도 중동의 불안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외교부도 ‘상황 보고’ 정도로 그칠 일이 아닌 것이다. ‘핵확산 저지’ 차원의 이스라엘·미국 공조라는 분석도 나오는 것을 보면, ‘북핵 폐기’ 과정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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