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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에게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한 TV 방송의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왔다. 여행하는 내내 “어머나 세상에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데가 있었구나” 했다.
통영에서 여객선을 타고 한 시간 후 도착한 섬 욕지도는 산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매번 다른 풍경을 보여줬다. 흡사 한 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보는 것처럼 선명했다. 온통 푸른 하늘이었다가 흰 구름으로, 흰 구름은 다시 푸른 바다로 전환됐다. 더욱이 선착장 옆에 줄지어 선 포장마차에서 파는 고등어회는 레몬 향에 적셔서 상큼하기 이를 데 없어 그가 고등어였다는 사실조차도 잊게 했다.
갈대밭과 곱게 가꾼 정원으로 소문난 순천은 차라리 꽃보다 뻘이었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빠져 내려가는 뻘은 그래서 많은, 수없이 많은 진귀한 먹거리들을 품고 있었나 보다.
지리산자락 아래 소년 시절부터 별을 헤었을 것 같은 맘씨 좋게 생긴 아저씨는 본인이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수성, 금성, 목성을 보여줬다. 지붕이 열리는 집에서 누워서 별을 보는 감상이라니. 평생 별만 보며 살겠다던 그분의 꿈 덕분에 그날 밤 나는 땅으로 떨어지는 뭇별들을 가슴에 가득 담아올 수 있었다.
한때 석탄이 주요 생산 품목이었던 삼척에 명경지수라 부를 만한 깊고 푸른 바다가 있고 그 바닷속에서 물질하는 해녀가 있다면 누가 믿을까. 지도상에서 보면 동해 바다를 끼고 있어 달리고 또 달려보고 싶었던 7번 국도. 속초에서 고성까지 몇 번을 가봐도 바다가 안 보여서 지도에 도로를 잘못 표기했나 의심했었다. 웬걸, 좁아진 길을 따라 우측으로 들어가 보니 제 스스로 자란 금강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다시 한번 해변 방향으로 굽은 길을 따라 들어가 본다. 해변이 끝난 자리에서 다시 바위가 시작이다. 좀 더 가까이 가서 파도도 만져보고 바다를 보라는 신의 뜻인가. 제주도 위미항은 어떤가. 등대로 가는 긴 방파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해질녘. 활처럼 휘어진 해변에 잘게 부서지는 파도 너머 뉘엿뉘엿 내려가는 낙조는 차라리 일출인가 했다.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언제든 갈 수 있다는 핑계로 한 번도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던 내 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들이 있었다니.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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