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다우지수 상승 행진을 보면서 21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뉴욕특파원으로 근무하던 1999년, 미국에서는 연초부터 증권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D10K’라는 신조어가 희망의 상징어로 등장했다. 100년 넘게 기다려온 ‘다우(D)지수 1만(10K: K는 1,000을 뜻하는 kilo의 줄인 말) 시대’ 진입은 전 세계를 짓누르던 불안과 공포의 상징어 ‘Y2K버그(컴퓨터가 2000년도 이후의 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오작동하고, 이로 인해 세계적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던 우려)’를 이겨낼 힘을 안겨줬다.
‘D30K’는 Y2K와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재앙을 일으키고 있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희망의 불빛을 밝혀준 쾌거임에 틀림없다. 뉴욕증시의 힘찬 기세는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 증시에 파급되면서 동반 활황을 이끌고 있다. 코로나 감염을 차단하기 위한 거리두기와 봉쇄조치로 경제활동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와중에 증시가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미국 민주당이 “한시가 급하다”며 요구한 3조달러 규모의 대대적인 경기부양 조치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정부가 거부해 한 푼도 집행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긴급 부양조치가 불발한 상황 속에서도 미국의 3분기 성장률은 33.1%(연율)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6.9%로까지 떨어졌다.
미국 경제와 증시가 이렇게 선방(善防)하는 요인으로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중앙은행인 Fed의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미국 경제가 살아나더라도 2023년까지는 현재의 ‘제로금리(연 0~0.25%)’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까지 미국 기업과 투자자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제로금리와 함께 엄청나게 공급한 시중 유동성도 증시를 떠받치는 주요 요인이다. 올 들어서만 4조달러 가까운 광의통화(M2)가 풀렸고, 상당액이 증시로 몰려들고 있다.
유동성이 아무리 풍부해도 살 만한 주식이 없으면 주가가 오르기 어렵다. 코로나 백신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제약회사와 테슬라 아마존 구글 등 ‘빅테크’업체를 필두로 한 기업들의 분투와 약진이야말로 ‘D30K 시대’를 열게 한 주역이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 4년간 적극적인 규제완화와 감세(減稅)를 통해 미국 기업들에 “한번 해보자”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북돋운 효과가 컸다. 2016년 11월 대통령 선거일에 18,332를 기록했던 다우지수가 4년 만에 61% 넘게 치솟은 게 ‘트럼프노믹스’의 신바람 효과를 웅변해준다.
트럼프가 품위와 절제를 찾아보기 힘든 기행(奇行)의 연속, 반대세력을 적(敵)으로 돌려버리는 거친 언행 등으로 인해 재선(再選)에 실패했지만 그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음은 주요 지표가 증명한다.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8년 집권 기간 4.6%나 쪼그라들었던 경제활동참가인구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3년 새(코로나 사태 돌발 직전까지) 1.1% 늘어났다. 일자리가 4.7% 불어나고 중위가계소득이 사상 최고인 월 4384달러로 불어난 혜택은 흑인 히스패닉 싱글맘 고교중퇴자 등 민주당이 보호해주겠다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장 많이 돌아갔다(월스트리트저널 7월 9일자, 필 그램 기고문).
그런 트럼프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조 바이든이 환경원리주의를 앞세워 각종 규제를 부활시키고 ‘큰 정부’ 기능 수행을 위해 세금을 올릴 것이라고 공언한 것은 시장참가자들을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 우세를 유지할 게 유력해졌고, 하원에서도 의석을 크게 늘리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의회가 바이든의 외골수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돼서다. 미국 경제에 드리워졌던 불확실성과 정책 리스크를 덜어낸 게 증시가 활력을 이어가게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행정·입법·사법 권력을 송두리째 거머쥔 정권이 주요 정책마다 ‘독주(獨走)’를 넘어 ‘폭주’로 치닫고 있는 한국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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