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노동을 개선함으로써 ‘국민의 휴식있는 삶’과 ‘일 생활의 균형’ 실현.”
고용노동부가 2018년 주52시간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밝힌 근로기준법 개정 기본 방향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면 일자리가 늘 것이라는 것이 정부의 기대였다. 하지만 중소기업계에선 급여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생계를 위협하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급감한 중소 제조업체들은 외국인 노동자 공급마저 끊긴 상태여서, 내년 주52시간 근무제 시행까지 겹치면 그나마 회복할 체력조차 잃게되기 때문이다. 주52시간제로 인건비 부담이 늘고, 납기 준수도 어려워져 대기업에서 일감을 받아내기 더 어려워진다.
올해 중소기업들이 필요하다고 고용노동부에 신청한 외국인 노동자 인력은 2만 1600여명이다. 신청 기업의 80~90%가 중소제조업체이고 상당수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주물, 금형, 도금 등 뿌리산업(전국 3만여개)에 속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따른 각국의 방역 조치로 실제 입국은 10%수준인 2200여명에 불과했다. 지난 3월 이후 입국이 전면 중단됐다가 8개월만인 지난달 19일부터 조금씩 입국이 허용돼 최근 캄보디아 노동자 50여명이 입국했다. 하지만 국내 격리시설 부족으로 이마저 원할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86.9%가 외국인 입국 지연으로 생산차질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국내 체류하고 있는 25만여명의 외국인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면서 ‘잦은 이직’,‘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분야) 직종 기피’ 등 현상이 벌어져 중소제조업체들은 또다른 속앓이를 하고 있다.
실제 경남 소재 한 영세 제조업체 A사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 3명이 갑자기 급여를 더 주는 곳으로 한꺼번에 이직하면서 생산 차질을 겪었다. A사 사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때를 지어 ”얼마 더 줄거냐“며 더 높은 급여를 주는 중소기업을 찾아 ‘쇼핑’하듯 공단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례가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몸값이 높아지면서 내국인 근로자들이 기피해 그동안 외국인들이 도맡았던 금속가공, 재활용처리, 기계장비 등 3D직종도 비상이 걸렸다. 외국인들이 ‘창고 정리’ 등 내국인 근로자가 할 수 있는 비교적 수월한 직종으로 이직 하면서 3D직종에 생산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김포 선반제조업체 B사 사장은 “불황으로 일감은 줄어드는데 외국인 근로자들마저 떠나니 정상적인 조업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외국인 구하기가 어려워져 아프리카나 중동 난민 인력을 활용하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 사태로 중소기업 대다수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정부 기대만큼 채용 여력이 있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이 몰린 시화·남동·반월 국가산업단지 역시 50인 미만 기업 가동률이 지난 9월 50~60%대로 떨어진 상태다. 생산설비의 50%만 가동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중소기업 취업자수는 2436만1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만9000명 감소해 지난 4월이후 최대 감소폭을 나타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대다수가 대기업에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소기업의 비용 증가는 대기업 비용 상승 및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는 다시 중소기업 거래 감소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9%인 663만개, 종사자수는 83.1%인 1710만명에 달한다. 서병문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비엠금속 회장)은 “정부는 주 52시간제로 채용이 늘 것이라고 하지만 이로인해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만 벌어져,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더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민경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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