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흩뿌려진 방언을 연구해온 한성우 인하대 국문과 교수는 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에서 우리말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를 이렇게 분석한다. 어법을 무시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저자가 강조한 건 태도다. 저자는 “검색만 해도 금방 나오는 단편적인 지식은 우리말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지 않다”며 “어법이 틀려도 ‘말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전해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어법이 주는 부담감을 덜고 ‘주인의식’을 갖자는 설명이다. 말과 글이 엉망일 수 있다. 하지만 주인은 한 명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다. 여러 주인과 함께 우리말과 글로 탈 없이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말의 주인 노릇을 해오며 오늘날 말과 글을 공유한다”고 역설한다.
책에선 우리를 옭아매는 훈수거리 20가지 사례를 든다. 영어를 그대로 직역한 ‘번역투’가 여기에 속한다. 우리말을 파괴하는 버릇이어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이다. 저자 생각은 다르다. 그는 “영어를 직역한 번역투 때문에 우리말이 쉽게 오염되진 않는다”며 “가령 ‘모임을 가지다’는 영어 ‘have’를 직역했지만 ‘가지다’나 ‘모이자’ 둘 다 우리말이다. 뜻이 통하면 굳이 가려 쓸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젊은 세대가 주로 쓰는 난해한 신조어도 무해하다. 과거 흔히 쓰였던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람), 외형을 조롱하는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등은 옛말로 굳어져 사라진 지 오래다. 저자는 “퍼 나르지 않아도 퍼질 말은 대중에게 알려진다”며 “비판과 질책은 소용없다. 말의 주인인 우리가 스스로 판단해서 단어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방임만 강조한 건 아니다. 자유롭게 우리말을 활용하는 근거는 책임감에서 나온다. 저자는 “주인이라면 자신의 것(말)을 마음대로 할 순 있지만 그 말을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며 “이런 믿음을 전제로 하면, 눈과 귀에 거슬리는 말과 글이 나타나도 공동체 일원들이 지성을 모아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