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강제실종워킹그룹(WGEID)은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다가 해방 이후 실종된 사람 10명에 대해 지난 7월 러시아 정부에 조사를 요청한 문서를 최근 공개했다. 이는 지난해 8월 사할린 강제동원 억류피해자 한국잔류유족회가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다가 귀국하지 못하고 행방불명된 25명에 대한 진정서에 대한 유엔의 첫 공식 답변이다.
일제는 일제강점기 시절 수만명의 한인을 당시 일본령이었던 남(南)사할린으로 강제동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탄광, 토목공사장, 공장 등에서 혹독한 노동에 동원됐다. 이들 중 대다수는 광복 후에도 6·25전쟁과 구 소련과의 불편한 관계 등으로 인해 1990년 한·러 수교 전까지 귀환하지 못했고 유해도 송환되지 않았다.
유해 봉환을 위해 유족회를 만들어 지난 10여년 간 활동한 신윤순 씨(76)는 “유족들이 바라는 건 러시아 입장에서 쓸모도 없는 유해라도 봉환을 해달라는 것”이라며 “유엔이 유족회의 진정을 받아들여 러시아 정부에 관련 조사를 요구한만큼 하루빨리 유해 봉환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1943년 9월 아버지 신경철(당시 24세)씨가 결혼 10개월 만에 16세 아내를 남겨두고 끌려갔을 때 어머니 백봉례씨(현재 92세)의 배 속에 있었다. 신씨가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것은 6·25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이 마지막이다.
유족회는 진정서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인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송환된데 반해 한인들만 돌아오지 못한 이유가 소련 당국이 이들을 강제 억류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소련 당국이 북한의 남침을 비밀리에 승인한 뒤 6.25전쟁 발발 직후 수 만 명에 달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귀국할 경우 북한 측에 불리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라는 주장이다.
이 가운데 유엔이 러시아 정부에 조사를 요청하며 유족들의 해석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제실종 사건이 아닌 경우에는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은 “WGEID는 사건이 강제실종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이를 해당국 정부에 문의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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