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판사 사찰 의혹 문건은 당초 이날 전국 법관 대표들의 회의 안건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회의 참석 법관 10명 이상이 찬성해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 확보에 관한 의안’이라는 이름으로 상정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참석한 120명의 법관 중 20여 명이 상정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관대표회의 측은 “검찰의 법관 정보 수집을 비롯해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여러 현안과 사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법관대표들이 이 사안을 논의한 것에 대한 정치적·당파적 해석을 경계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회의 전부터 원론적인 입장만 나올 뿐 구체적인 후속 조치 등이 의결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지금 관련 행정소송이나 (검찰총장) 징계 절차 등이 진행되고 있어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며 “이런 사안에 대해선 절제가 필요하다. 앞으로 사건을 맡을 재판부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개인적인 의견 표명을 할 순 있지만 사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의사 표명은 쉽지 않다”며 “법원은 ‘판결’로서 의사를 밝히는 곳”이라고 했다.
사법부가 이번 사안을 공식적으로 다뤄야 할지에 대해서도 법원 내 의견이 엇갈렸다. 지난달 25일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와 송경근 청주지법 부장판사, 김성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이봉수 창원지법 부장판사 등은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려 사법부 차원의 논의를 촉구했다. 반면 대법원 재판연구관들과 차기현 광주지법 판사 등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에서 근무 중인 한 중견 판사는 회의에 앞서 “법관들의 사생활을 건드렸다는 것은 어쨌든 부적절하기 때문에 사법부가 입장을 밝힐 수 있다”면서도 “다만 문건 수준에 비춰봤을 때 이걸 가지고 법관들이 수사를 촉구한다거나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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