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與 입법독주하는데…대책 없이 뚫리는 野

입력 2020-12-07 17:35   수정 2020-12-08 01:34


7일 오전 11시50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가 “오늘 법제사법위 소위원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에 대해 논의를 중단키로 했다”고 발표하자,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거대 여당의 법안 강행 처리를 막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법뿐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과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 등 주요 쟁점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기 위한 절차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주요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여당의 명분 쌓기에 야당이 완전히 휘둘렸다”고 털어놨다.
지도부 전략 부재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 정책 대안 부재, 대선 주자 부재 등 ‘3무(無) 현상’이 겹치면서 수권정당으로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단일대오를 갖춰 군사작전하듯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는 거대 여당과 대조적이라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한 달여 전부터 공수처법, 기업규제 3법 등을 거론하며 “정기국회에서 개혁 입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지난 2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통과되자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 “오는 9일 본회의까지 개혁 입법 과제를 마무리하겠다”고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는 위기 상황에 설마 강행 처리하겠냐”는 안일한 분위기가 우세했다. 민주당이 본회의를 불과 이틀 앞둔 이날 여러 상임위에서 다수의 쟁점 법안을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붙이자 해당 상임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크게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는 “거대 여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 외에 뾰족한 대응 방안이 없다”고 항변했다. 민주당이 이날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공수처법과 상법 개정안 의결을 시도하자 국민의힘 측은 황급히 이 법률안을 안건조정위원회 안건으로 회부했다. 안건조정위는 이견이 있는 사안을 심층 논의하기 위해 다수당(민주당) 의원 3명과 그 외 의원 3명 등 총 6명의 위원으로 꾸려진다. 최대 90일간 안건을 심의할 수 있다. 본회의 법안 통과를 저지할 시간을 벌겠다는 게 국민의힘 측 노림수였다.

이에 민주당은 ‘표결 처리’로 응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건조정위에 상정된 안건도 전체 위원의 3분의 2(4명)가 찬성하면 곧바로 상임위 전체회의로 넘길 수 있는 국회법 조항을 활용했다. 민주당은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들을 동원하면 의결 정족수(4명)를 채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안 없이 ‘좌클릭’
국민의힘은 이날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원내(법사위) 농성 △9일까지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철야 농성 △본회의 필리버스터(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등 당 차원의 대책 세 가지를 발표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면적 의사일정 거부와 장외투쟁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가 진행된 안건은 다음 회기의 본회의가 열리면 바로 표결에 부쳐질 수 있다”며 “필리버스터는 임시국회를 소집하면 무용지물이 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이날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다.

당 안팎에선 지도부가 주요 정치 현안에 건설적인 대안을 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법, 기업규제 3법 등 쟁점 법안에 대해 그동안 당론도 없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 원내대표는 이들 쟁점 법안에 대해 “상임위 간사 주도로 대응하라”는 지침만 내렸다. 이러다 보니 당내 이견이 가감 없이 외부로 표출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정치 소신이라며 공개적으로 찬성한 기업규제 3법의 경우 당내에서도 “중도표를 의식해 큰 고민 없이 좌클릭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오전 국민의힘 비대위에서도 이런 당내 이견이 표출됐다. 비대위에서는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 구속에 대한 사과 문제가 논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더 늦지 않게 이번주 사과하겠다”고 했지만 주 원내대표는 “시기를 조율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당 내부에선 “전직 대통령에 관해 사과하는 시기를 놓고 한가하게 다툴 때냐”는 반응이 나왔다.

좌동욱/고은이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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