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사찰 의혹과 관련한 문건은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에게 내린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의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이 문건은 당초 회의 안건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이날 법관 10명 이상이 찬성해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 확보에 관한 의안’이라는 이름으로 상정됐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120명 법관 중 20여 명이 상정에 동의했다.
법관들은 찬반 토론을 통해 입장문 원안과 수정안 3~4개를 모두 부결시켰다. 원안과 수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검찰의 법관 정보 수집 및 보고가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지양돼야 한다”는 식의 문구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법관대표회의 측은 “서울행정법원에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고 앞으로 추가로 (재판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 사안이어서 전국법관대표회의 차원의 표명은 신중해야 한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어 “법관대표들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하고 오늘의 토론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안팎에선 회의 전부터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 조치 등은 의결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서울에서 근무 중인 한 중견 판사는 회의에 앞서 “법관들의 사생활을 건드렸다는 것은 어쨌든 부적절하다”면서도 “다만 문건 수준에 비춰봤을 때 이걸 가지고 수사를 촉구한다든지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입장문 채택이 부결되면서 오는 10일 검사징계위원회를 앞둔 윤 총장은 한시름 놓았다. 지난 1일 서울행정법원이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명령 효력을 정지시킨 데 이어 이날 법관들도 대응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정리하면서 추 장관 측이 오히려 수세에 몰리게 됐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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