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79주년…美 반응, '中 책임' 강조한 6·25전쟁과 달랐다

입력 2020-12-08 18:14   수정 2020-12-08 19:16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79주년을 맞아 7일(현지시간) 미국 주요 외교 인사들이 잇달아 희생자를 추모한 가운데 일본의 공격이라 명시한 메시지는 없었다. 북한의 6·25전쟁 남침과 이에 대한 지원을 부정하는 중국을 강도높게 비판한 장진호 전투 70주년 추모 메시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미군은 7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진주만 공습 79주년 온라인 추모행사를 열었다. 진주만 공습 생존자들이 직접 참석한 예년 행사와 달리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화상으로 진행됐다.

미국 정부 인사들은 잇달아 추모 메시지를 공개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은 7일 트위터에 “국가는 당시 헌신했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빚을 졌다”며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합당한 관심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같은날 “1941년 12월 7일 목숨을 잃은 2403명의 장병과 민간인들을 기억하겠다”며 “어두웠던 그 날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구한 수많은 영웅들을 추모한다”는 글을 올렸다. 진주만 공습이 일본에 의한 공격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메시지는 없었다.

이는 지난달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였던 장진호 전투 발발 70주년을 맞이한 메시지와는 상반된다. 캘 브라운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장진호 전투 70주년과 관련해 5개의 글을 올리며 “북한이 중국의 지원을 받아 한국을 침공하며 6·25전쟁이 시작됐다”고 6·25전쟁 발발의 중국 책임을 강조했다.

브라운 수석부대변인은 당시 “마오쩌둥은 북한의 남침을 권장했지만 동맹과 함께 주권과 자유를 수호하려는 미국의 의지를 과소평가했다”며 “70년간 중국 지도부는 책임을 피하려고 자국민에게 한국전쟁을 호도해왔다”고 중국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중국 당국자들, 언론, 심지어 교사들은 여전히 한국전쟁을 ‘항미원조’라 부른다”며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전쟁이라 부르며 책임을 회피해온 중국을 정조준했다. 당시 그의 트윗은 주한 미국대사관은 물론 주중 미국대사관도 리트윗을 하며 온라인상에서 큰 파장이 일었다.

미국은 전쟁이나 테러 등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날을 공식 추모일로 정하고 정부 차원의 추모 메시지를 내왔다. 하지만 상대방의 책임을 강조하기보다는 희생자 추모와 참전용사들에 대한 존경을 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달 중국을 맹비난한 브라운 수석부대변인도 진주만 공습과 관련해서는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한다”는 짤막한 메시지만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진주만 공습 추모 메시지가 미국의 ‘전통적인 방식’을 따른 반면 중국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던 장진호 전투 추모 메시지가 매우 이례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중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중국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항미원조’를 강조하며 북한의 남침과 중국의 지원을 부인하는 역사왜곡에 앞장서왔다.

설상가상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월 국가주석으로서는 20여년만에 처음으로 6·25전쟁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항미원조 정신은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고 강대한 적들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을 정조준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도 미·중 관계 개선은 요원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의회가 6일(현지시간) 공개한 2021회계연도 국방예산안에는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과 태세를 증진하고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태평양억지구상’ 항목이 신설돼 22억달러(약 2조4000억원)가 배정됐다. 민주·공화 양당이 초당적으로 중국에 한층 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특히 바이든 당선인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 시절부터 한·미·일 삼각공조와 동맹 관계를 강조해왔다. 이 가운데 미 대선 직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방문하며 한·미·일 삼각공조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對中) 정책도 트럼프 행정부 때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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