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총리는 독일 정부가 코로나 지출로 올해 2180억유로(약 287조원)의 빚을 낸 데 이어 내년에도 1800억유로(약 237조원)의 빚을 더 내기로 하면서 재정적자가 커지는 사정부터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수년간 빚을 내지 않고 재정운용을 잘 해왔기에 재정을 대대적으로 동원할 수 있었지만 재정 지원을 끝없이 지속할 수는 없다. 2023년부터는 급격히 증가한 신규 국가채무를 갚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정파가 국가부채를 조기에 갚자며 국민에게 미리 ‘고통‘을 예고하고 ‘인내’를 호소하는 게 어느 나라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메르켈 연설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나라살림과 정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위기 전부터 4년째 ‘슈퍼예산’이라는 비판 속에 국가부채는 올해만 114조원이 늘어 중앙정부 채무가 813조원이 됐다. 증가폭도, 규모도 사상 최대다. 반면 국세 수입은 올 들어 10월까지 6조7000억원 감소했다. 장기불황에 빠져 앞으로도 세수 부진이 확실시되지만 나랏돈 쓰기에는 여야가 없고, 정부·지자체 구분도 없다. 정부가 뜸들이다 내놓은 ‘재정준칙’도 느슨한 데다 구속력도 없다. 그나마도 2025년부터 적용한다며 다음 정부나 지키라는 식이니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복지를 담보하는 지속가능한 재정, 미래세대 부담을 고려한 중장기 안목의 나라살림을 생각한다면 이럴 수는 없다. 5년 단임제라지만 최소한의 자기 책무는 확실하게 지는 게 책임 정치의 출발일 것이다. ‘고통분담과 희망’을 함께 언급한 메르켈에 대해 “비전, 이데올로기 같은 말을 언급하지 않는 등 실용주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반대세력과의 갈등을 진정시키는 능력이 있다”(파이낸셜타임스)는 평가가 과찬으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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