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행정·사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통제장치도 없어 ‘위헌적 기구’라는 견해가 만만찮은 상황에서 공수처장까지 입맛대로 고르겠다니, 그 일방독주에 말문이 막힌다. 과반 의석을 가진 다수당일지라도 적법절차, 인권, 민주주의 등 공동체의 기본가치를 훼손한다면 독재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여당 법사위원장은 90일까지 열 수 있는 안건조정위를 1시간 만에 졸속 종료시키고 야당 의원의 토론마저 봉쇄했다. 미리 거쳐야 하는 ‘비용 추계 생략’ 절차를 공수처법 의결 후에 하는 등 졸속과 부실이 넘쳤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리 사회의 기본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큰 논쟁적 법안들도 마구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3% 룰’과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과 ‘5·18 왜곡처벌법’이 공수처법과 약간의 시차를 두고 법사위를 통과했다. ‘공정경제’를 위해 상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여당 주장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규제란 점에서 궁색하게 들린다. 정부 발표·조사와 다른 내용을 주장하면 무겁게 처벌하는 5·18특별법은 민주주의 핵심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하는 악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엉터리 법안의 기습처리를 주도하는 곳은 법사위다. 관행적으로 야당이 맡던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갖겠다고 횡포를 부릴 때부터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동시에 앞으로 어떤 어이없는 법안이 더 만들어질지 아찔하다. 여당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10여 개 쟁점법안을 최대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상태다. 공수처법은 물론 야당과 협의하겠다던 ‘기업규제 3법’과 제대로 논의도 안 된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특별법’, 특수고용직도 반대하는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법’ 등이 대거 포함됐다.
이런 일련의 입법 폭주가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정치적 지형을 굳히기 위해 ‘기울어진 법·제도의 운동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면 비열한 전략이다. ‘K방역’의 허상이 드러나며 경제가 ‘올스톱’ 위기로 치닫는 가운데 정치 이해득실만 따져 규제 법안들을 쏟아내는 것은 국가적 자해행위나 마찬가지다. 맹목적 지지층만 보는 삼류정치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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