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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컴퓨터의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뛰어넘어 디지털컴퓨터로는 불가능한 계산을 해낸다는 양자컴퓨터, 도청이 불가능한 절대적인 통신보안을 가능하게 한다는 양자암호 등의 양자기술은 물리학자와 정보과학자뿐 아니라 미래기술에 관심있는 이들을 흥분시켰다. 이제 양자정보 연구 초기의 흥분은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내가 “밀월 기간은 끝났다(Honeymoon is over)”고 하면, 젊은 연구원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양자컴퓨터는 불가능하고, 양자암호는 필요없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현실로 다가온다. 이제 진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어느 첨단기술 회사에서 있었다던 일이다. 신제품 개발에 몇 차례 실패한 팀장은 새로 꾸려진 연구팀의 새내기 연구원들에게 회사 도서관에는 가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몇 년 뒤 개발에 성공한 뒤 연구원들이 도서관에 가보니, 그 제품 개발은 불가능하다는 자료로 가득하더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렇게 부정적인 의견을 무시해선 안 되겠지만, 양자기술 연구가 직면한 엄청난 도전을 즐기지 않고 물러날 수는 더더구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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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약속했던 꿈의 양자컴퓨터가 되려면 물리적 큐비트 수십만 개가 아주 잘 작동해야 하는데, 불가능하다는 의견 속에 구글과 IBM 외에도 여러 벤처기업이 도전하고 있다. 작년 구글에 이어 올해 중국과학원이 양자우위(Quantum Supremacy)를 달성했다는 발표를 했지만, 그들이 자랑하는 양자컴퓨터가 정말 유용한 문제를 제대로 풀어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양자암호기술에 핵심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바람잡이(decoy) 방법은 이미 2003년 황원영 전남대 교수가 발명했는데 한국이 이를 키워내지 못한 점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양자정보과학 연구에 2019년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한 이후 훌륭한 연구자들이 기회를 얻게 됐고, 올해에는 양자정보과학연구지원센터가 출범했다.
고등과학원에서 2019년 열렸던 아시아 양자정보 국제학술대회가 올해에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호주 시드니에서 온라인으로 세계에 중계됐다. 역병 유행을 피해 고향에 내려가 있던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처럼, 코로나 사태에도 과학자들은 도전적인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여러 기술에 10년 이상 도전해 성취해내는 일이 양자정보 연구자들 사이에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초전도와 이온트랩 양자컴퓨터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호주는 실리콘기술을 이용한 100만큐비트 집적회로에 도전하고 있다. 결혼생활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여전히 수많은 남녀가 도전해 행복을 추구하듯이.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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