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재벌 개혁’을 위해 공정거래법 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뒤 일관되게 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전속고발권은 가격 담합 등 공정거래 분야 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해야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정부·여당의 입장은 지난 8일 하루에만 유지, 폐지, 유지 등 세 차례 번복됐다. 9일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 속에 정상적인 의회 민주주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주요 쟁점 사항만 열 개가 넘는 방대한 내용이 담겼다. 이런 전부개정안 또는 제정법안이 상임위에 상정되면 △대체토론 △공청회 △소위원회 심사 △축조심사 △찬반 토론 등 국회법에 규정된 단계를 밟아야 한다. 대개 위원회 의결로 생략할 수 있는 절차와 달리 법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며 의결하는 축조심사는 생략할 수 없다고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이런 절차들을 아예 생략하거나 요식행위로 다뤘다. 법안심사 소위원회는 단 한 차례만 열렸다.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회 간사인 성일종 의원은 “방대한 법조문을 한번 눈으로 대강 보고 회의를 끝냈다”고 맹비난했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도 이틀 전인 지난 7일에야 공청회가 열렸다. 야당 의원들이 빠진 가운데 전문가 두 명이 약 30분간 법안 내용을 설명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미래 입법 과제로 내세운 15개 주요 쟁점 법안 중 13개가 이런 방식으로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의 경우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제정법이다. 이들 법안이 모두 3~4일 사이 상임위 소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 체계·자구심사를 위해 5일간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국회법(59조) 절차도 생략됐다.
지난 7월 말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 3법’은 민주당이 이 같은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강행 처리한 대표 법안이다. 법안심사 소위를 아예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후 국회를 통과해 전셋값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민주당이 공정거래법 개정 과정에 전속고발권에 대한 방침을 수차례 번복한 것도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야당 측 안건조정위원인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하며 버티자 민주당은 안건조정위에서 전속고발권 폐지 조항을 담은 법안을 의결했다. 이후 곧바로 상임위 전체회의를 열어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바꿨다.
좌동욱/김소현 기자 leftki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