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남북관계 발전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했다. 당초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여론전을 펼치겠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본회의 직전 열린 원내대표 회동에서 계획을 변경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깔끔하게 찬반토론 정도로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조목조목 전달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합리적인 원내투쟁을 하겠다는 취지지만 야당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야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무력하게 주저앉아 버렸다는 지적이다.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도 야당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여당이 기업규제 3법과 노동관계법 등을 강행하려 하자 안건조정위원회 신청으로 맞섰지만 조정위에 범여권 의원이 포함돼 불리하다며 조정위 투쟁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의원들은 소위에 상정된 안건 41건에 대해 안건조정위를 신청했다가 조정위 회의 직전 대부분 철회하기도 했다. 한 국민의힘 환노위 의원은 “여당에 모든 책임을 지우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이 조정위·법안소위·전체회의에 모두 불참하는 사이 여당은 자신들의 입장을 추가로 반영한 수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이 원내 정책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한 건 지난 4월 총선 패배 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주호영 원내대표 지도부가 출범하고부터다. 지난해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황교안 지도부가 삭발과 단식 등 강경 투쟁을 한 게 총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현 상황이 더 문제라는 내부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주요 입법에 대해 당내 협의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대응 전선이 흐트러졌다는 비판도 있다. 김 위원장은 상임위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 여당이 추진하는 기업규제 3법 등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정무위원은 “따질 게 많은 제정안인데 김 위원장이 ‘덮어놓고 찬성’하면서 논의에 제약이 생긴 게 사실”이라고 했다. 내년 4월 임기가 만료되면 떠날 ‘외부인’인 김 위원장과 당내 주류 세력이 따로 움직이면서 애초 ‘단일 대오’를 형성하기엔 무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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