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이 급격히 늘어나자 금융당국이 은행들을 불러 질책했다. '관리가 안 된다'며 사실상 가계대출 증가의 책임을 은행에게 돌린 것이다. 은행들은 난처한 표정이다. 사실상 금리를 더 올리거나 대출을 중단하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3~4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이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들을 만났다. 금융당국에서는 국장급이, 은행에서는 부행장급 임원들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지난달 은행이 집행한 가계대출 잔액 추이를 함께 검토하면서 대출 잔액이 급격하게 늘어난 이유와 어떻게 줄여나갈 건지 등을 논의했다. 논의보다 일방적인 질책에 가까웠다는 주장이 은행권에서 흘러나온다.
가계대출 잔액이 크게 늘어난 2개 은행은 별도의 개별 면담도 이뤄졌다고 한다. '충분한 노력이 없었다'는 말들이 주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행장들이 금융당국에 불려가 가계대출 속도 조절을 약속하고 왔다는 말까지 나왔다. 해당 은행이라고 알려진 곳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신한·우리·국민·하나·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66조9716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보였다. 10월 말(657조5520억원)과 비교해 한 달 만에 9조4195억원이 늘었다. 신용대출 잔액도 133조6925억원으로 같은 기간 4조8495억원이 폭증했다. 급격한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금융당국이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다만 가계대출 증가의 책임을 은행에 돌리는 모습을 두고 은행권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수익을 위해 대출을 막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조건이 되는 차주의 대출을 은행이 어떻게 일방적으로 막느냐"며 "대출 수요에 따라 대출이 나간 것뿐이다. 당국의 신용대출 규제가 수요를 자극한 걸 먼저 지적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책임을 돌리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의 가계대출 동향이 발표되는 시점에 맞춰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에 대한 책임으로 은행을 질책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가계대출 잔액이 크게 늘었다는 발표가 나오는 당일 오전, 금융당국이 은행을 질책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며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시점이 묘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이같은 주장이 나오는데 대해 금융당국은 말을 아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계대출 관리방안 시행 전 일부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대출 잔액이 늘어난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은행 질책과 관련해서는 언급하기를 꺼렸다.
대출 규제 압박이 심해지면서 대출받기는 어려워지고 금리는 더 오를 전망이다. 국민은행은 전날부터 대출상담사를 통한 주택담보·전세대출 모집을 전면 중단했고, 우리은행도 직장인대출 판매를 멈췄다.
5대 은행은 급증한 신용대출을 관리하기 위해 대출 금리 인상 효과가 있는 우대 금리 축소를 지난달부터 진행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도 지난 3일부터 직장인 신용대출 등의 기본금리를 0.1~0.25%포인트 올렸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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