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돈을 많이 쓰면 경제가 나아질까?” 정부가 1년간 쓰는 예산을 두고 벌어지는 숱한 논쟁의 핵심은 이 질문 속에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답은 대강 세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정도 그렇다.” 정부도 가계(가정), 기업과 함께 3대 경제주체의 하나이기 때문에 돈(지출)을 안 쓸 수는 없다. 세 가지 답 중 어느 것이 더 옳은지는 정부가 가진 태생적 성격을 따져 보면 알 수 있다.
정부가 지닌 태생적 성격
정부는 가계, 기업과 매우 다른 성격을 하나 가졌다. 가계와 기업은 직접 돈을 벌지만, 정부는 자기가 돈을 벌지 않는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가계는 노동임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기업은 생산과 판매를 통해 돈을 번다고 배운다. 그렇다면 정부는? 정부는 세금을 많이 거두거나, 돈을 찍거나, 빚을 내서 돈을 쓴다. 이 말은 즉, 가계와 기업은 자기가 벌어서 쓰기 때문에 돈을 아껴 쓰려 한다. 어려울 때는 소비를 줄이고, 여유로울 때는 저축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엔 돈을 아껴 쓰고 저축해야 할 인센티브가 없다. 정부는 관리들의 돈이 아니라 남의 돈, 즉 국민의 돈을 쓴다. 만일 정부가 관리들의 돈으로 운영된다면, 아껴 쓸 것이다. 주인은 자기 것을 아끼지만, 주인을 대신하는 사람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이치와 같다. 이것을 우리는 ‘주인-대리인 문제’라고 부른다. 이것은 정부의 고질적인 한계다.
‘재정승수’라는 어려운 말
여기서 좀 더 생각하면 ‘재정승수’라는 전문용어를 만나게 된다. 정부가 100원을 쓰는 게 효율적일까? 민간 기업이 100원을 쓰는 게 효율적일까? 여러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동일한 100원을 정부가 쓰면 60원의 효과만 내고, 민간이 쓰면 140원의 효과를 낸다고 한다. 정부의 재정승수는 0.6이고, 가계와 기업을 포함한 민간의 승수는 1.4라는 말이다. 이 말은 곧 민간이 쓸 돈을 정부가 세금으로 많이 거둬서 쓰면 국가적으로 손해라는 의미다. 정부가 커지면 안되는 이유다.
정부는 돈을 많이 써야 할 이유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버릇이 있다. 정부는 집권한 정치인들이 구성한다. 이들은 인기와 선거 에 민감하다. 선거에 입김이 센 이익단체와 특정 계층, 특정 지역, 특정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려 한다. 선거 때 큰 도움이 된다. 일반 국민은 생업에 종사하느라 이익단체만큼 입김을 행사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이익집단에 ‘포획(이론)’되는 것이다.
지역구 사업 챙기는 의원들
국회의원 역시 각자의 지역구 사업에 예산이 배정되도록 끼리끼리 돕는다. 우리 지역에 1000억원, 당신 지역에 1000억원.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정당들도 짬짜미로 도우면서 예산을 나눈다. 이것을 정치학 용어로 ‘로그 롤링’이라고 한다. 물 위에 떠 있는 통나무를 굴리기 위해 서로 발을 맞춰 굴린다는 의미다. 대통령들도 마찬가지다.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무상의료, 무상교육 같은 복지예산을 마구 늘린다. 공짜쿠폰, 공짜돈도 마구 뿌린다. 내 돈이 아니며, 내 임기 내에 갚아야 할 돈도 아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번도 예산이 줄어든 적이 없다. 1963년 770억원에 불과했던 예산이 726배나 늘어 내년 예산은 558조원이 됐다.
정부도 경제 주체이기 때문에 돈을 안 쓸 수는 없다. 문제는 ‘균형재정’에 얼마나 근접하느냐다. 균형재정이란 번 만큼 쓰는 것을 말한다. 가계나 기업은 가능한 한 빚을 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버는 것(세금)보다 더 쓰려(빚+화폐발행) 한다. 나랏빚이 매년 늘어나 810조원에 이른 이유다.
공무원들도 자기이익 위해 일한다
정부 예산이 늘어날수록 국가부채도 증가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산이 늘어나는 이유를 ‘공공선택론’으로 설명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제임스 뷰캐넌과 고든 털럭이라는 학자는 ‘공무원들도 공익보다 자기이익에 따라 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각 정부 부처들이 돈을 많이 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때문에 사업계획과 예산액을 늘린다는 것이다. 공무원 수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기만 하는 이유를 ‘공공선택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경제학적으로는 케인스(Keynes)냐, 세이(Jean-Baptiste Say)냐에 따라 정부 예산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케인스는 정부의 돈쓰기를 매우 중시한다. 경기가 나쁠 때 정부가 적자를 감수해서라도 재정을 투입하면 ‘유효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케인스 반대자들은 “재정투입으로 경제가 나아진다는 것은 착시현상이다. 돈을 투입해서 경제가 나아진다면, 지구상에 가난한 나라가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세이는 경제를 살리려면 생산 즉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은 A재화를 생산하면 A재화의 수요가 저절로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A재화가 생산되면 B, C, D재화의 생산이 늘어나 경제가 살아난다는 의미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다.
고기완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3대 경제주체인 정부, 가계, 기업의 특성을 공부해보자
② 정부가 돈을 쓰면, 민간이 쓸 때보다 왜 효율성, 경제성이 떨어질까?
③ 로그롤링과 포획이론, 주인-대리인 문제를 더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