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고 로보틱스 사업을 본격화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회장으로 추대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성사된 첫 대형 인수합병(M&A)이다. 특히 정 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지분 20%를 인수하며 책임경영 의지를 드러냈다.
현대차그룹은 총 11억 달러(약 1조2000억원) 가치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을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인수한다고 11일 밝혔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 소프트뱅크그룹은 지분 20%를 보유하게 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인수에는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정의선 회장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최종 지분율은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 △정의선 회장 20%로 구성된다. 정 회장은 미래 신사업인 로보틱스에 강한 의지를 보여주면서 책임경영도 강화하고자 직접 지분 인수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통해 글로벌 로봇 시장을 선점한다는 방침이다. 로봇의 센싱(인지) 기술은 자율주행차·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대응 및 판단 기술,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정밀하게 구동시키는 제어 기술 등은 향후 완전한 자율주행 구현에 필수적인 요소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로봇 운용에 필수적인 자율주행(보행)·인지·제어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미항공우주국(NASA), 하버드 대학교 등과 4족 보행이 가능한 운송용 로봇 ‘빅 도그’를 개발해 화제가 됐고 이후 더욱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빠른 4족 보행 로봇 ‘치타’, ‘스팟’ 등을 공개했다. 2016년부터는 2족 직립 보행이 가능한 로봇 ‘아틀라스’도 선보였다. 물건을 집고 옮기는 물류용 로봇도 개발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착용형 로봇 기술, 생산 및 물류 자동화 기술 등을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봇 기술과 결합해 시너지를 낼 계획이다. 우선 그룹사 측면에서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등과 연계해 시장 규모가 크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물류 로봇 시장에 진출해 스마트 물류 로봇과 솔루션을 선보이기로 했다. 건설 현장 감독이나 시설 보안 등 각종 산업에서 안내·지원 역할을 하는 서비스형 로봇 개발에도 나선다.
로봇 업계는 물류 로봇 시장과 안내·지원 로봇 시장이 향후 약 7년 이내에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이미 지난해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양산형으로 개발한 뒤 일부 시장에 시범 공급하기도 했다. 올해 6월부터는 본격 판매에 나서고 있는 만큼 향후 국내외 각종 건설현장이나 제조 공정에 서비스형 로봇으로 투입이 확대될 전망이다.
2017년 245억 달러 수준이던 세계 로봇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CAGR) 22%를 기록, 올해 444억 달러 수준으로 커질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오는 2025년까지 세계 로봇 시장이 32%의 높은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며 1772억 달러(193조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장기적으로 혁신적인 시장 성장이 예측되는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인간형 로봇은 사람과 유사한 2족 보행을 하고 팔과 손을 사용해 사람과 같은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는 로봇이다. 환자 간호 등에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위험 요소가 많은 재난현장 구호나 우주 산업에도 쓰일 전망이다.
정 회장은 이날 “세계 최고 수준의 로보틱스 기술을 보유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며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인류의 행복과 이동의 자유,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가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역량에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보틱스 기술이 더해져 미래 모빌리티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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