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을 대공 수사에서 손 떼게 하는 국정원법은 안보 공백 우려를 불러왔고, 북한 김여정이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라”고 하자 여당이 서둘러 제정에 나서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린 대북전단금지법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주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가 위기에 빠졌다”는 비판마저 제기됐지만, 여당은 아랑곳 않는 태도다.
여당이 지난 10일 공수처법을 처리한 뒤 “야당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필리버스터 보장을 약속했다가 사흘 만에 뒤집은 명분은 ‘코로나 방역’이었다. 하지만 그전부터 코로나 위험 경고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군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방역을 핑계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막은 것은 억지스럽다.
이 때문에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킨 속내가 따로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여당은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할 때만 해도 파급력을 낮게 봤다. “얼마나 할지 두고보자”는 조롱 섞인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국민의힘 초선 58명 전원이 ‘벌떼 공격’에 나서자 표정이 달라졌다. 초선들의 이런 결기는 무기력한 야당의 야성(野性)을 일깨웠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여당으로선 그렇지 않아도 정권 지지율이 미끄럼을 타는 마당에 필리버스터 파장을 서둘러 차단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소수 야당의 의견 개진을 허용하는 최소한의 대국민 호소 장치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인 2016년 테러방지법 제정을 막기 위해 8일간 필리버스터를 했을 때 당시 여당은 이를 막지 않았다. 그런데도 필리버스터법이 재도입된 2012년 이후 처음으로 강제 종료라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대통령부터 숱하게 야당과의 협치를 약속했지만 애당초 빈말이었던 셈이다. 이런 식이면 야당이 왜 필요한가. 토론과 숙의 없이 정파적 이익만 관철시키려 들면 전체주의나 다름없다. 개헌 빼고 다 할 수 있는 거대여당이 무엇이 두렵길래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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