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일수록 교육에 투자해야"…KAIST에 줄잇는 '통큰 기부'

입력 2020-12-16 17:42   수정 2020-12-24 19:41

‘한국의 스탠퍼드’로 불리는 KAIST에 자수성가한 노(老)기업인들의 고액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노벨상 수상자를 꼭 배출해달라”며 676억원 상당의 부동산(누적 기부액 766억원)을 쾌척한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84)에 이어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85)이 16일 “인공지능(AI) 혁신에 써달라”며 현금 500억원을 내놨다. 올 들어서만 ‘무기명’으로 전달된 135억원을 포함해 1474억원이 KAIST에 모였다. 지난해 서울대(1170억원), 고려대(748억원)에 쌓인 기부금을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대 규모다. KAIST는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 등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원조 차원에서 1971년 설립된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으로 내년 개교 50주년을 맞는다.
융합·산학연구·AI 혁신에 ‘최적’
김 명예회장은 이날 약정식에서 “AI 육성에 국운이 달렸다. KAIST가 AI 혁명을 선도해달라”며 기부금 전액을 KAIST AI대학원 육성에 써달라고 당부했다. 여러 대학 중에서 KAIST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김 명예회장은 “많은 전문가를 만나며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AI는 단독 학문이 아닌, 융합 학문이라는 것”이라며 “이런 융합 학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과학기술 융합 인재가 집결한 KAIST가 ‘AI 플래그십’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차원에서 기부를 결심했다”고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이날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통계를 인용해 AI 경쟁력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1년간 미국이 AI 관련 특허를 15만 건, 중국과 일본이 각각 14만 건, 8만 건을 출원했다. 반면 우리는 4만 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김 명예회장은 “선진국 모두 국운을 걸고 AI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은 큰 그림 없이 저마다 각개약진을 하고 있다”며 “폭넓은 산학협력 네트워크를 갖춘 KAIST가 AI 발전의 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첫 문을 연 KAIST AI대학원은 구글, IBM왓슨,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AI 연구소 출신 전임교수 13명 등 21명의 교수진을 갖췄다. 석·박사과정 학생 138명이 재학 중이다. 지금은 대전에 있지만 내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서울 홍릉 KAIST 경영대 캠퍼스와 강남 양재 연구개발(R&D) 혁신지구로 대학원을 이전할 계획이다.

이 같은 이전 계획 자체가 김 명예회장의 기부에 힘입어 가능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명예회장은 “이노베이션(혁신)은 연구와 생산기술의 협업에서 일어난다”며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연구소)이 주변에 있고 스타트업이 밀집해 있는 경기 판교와 가까운 거리라 (양재 R&D 지구가) AI 이노베이션을 하기에 최적의 위치”라고 말했다.
“KAIST라면 할 수 있다” 믿음
KAIST에 기업인들의 고액 기부가 이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투자받은 만큼 성과를 내는 KAIST의 ‘저력’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석·박사급 연구인력의 25%가 KAIST 출신이다. 단일 대학 출신 비중 1위다. 재학생 대다수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안정적으로 R&D에 몰두할 수 있게 한 것도 성과 창출에 유리한 배경이다. 올해 기준 재학생 1만609명에게 지급한 장학금은 총 1169억원으로, 1인당 11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역시 국내 대학 가운데 최대다. 재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R&D에 필수적인 컴퓨팅 능력을 자연스럽게 기른다.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52),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53) 등 1세대 벤처기업인뿐 아니라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47) 등 국내 IT산업을 선도하는 인사 대부분이 KAIST 출신이다. 로봇 등 기계공학, 인공위성 제조 등 항공우주 분야에서도 ‘국내 최초’ 타이틀을 대다수 보유하고 있다.

역대 최고액 기부자인 이수영 회장은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KAIST는 한국뿐 아니라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이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올 7월 기부 당시 과학 패러다임을 바꿀 특정 연구에 20년 동안 온전히 집중할 ‘싱귤래리티 교수’직을 신설해달라고 부탁했다.

많은 기업인이 KAIST를 ‘간판’이 아닌,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진정한 ‘혁신 기술’의 요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전=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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