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공포에서 가장 빠르게 벗어난 곳은 주식시장이다. 코스피지수 3000. 몇 달 전만 해도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왠지 사기꾼 같았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요즘 자연스럽게 주가 3000을 부르고 있다.
시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렴풋한 답이 보인다. 한 투자자는 이런 말을 했다.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좋은 기업을 찾고, 그 주인이 되는 게 가장 확실한 투자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과정에서 한국은 이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시장 중 하나였다.
우선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을 보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네이버 현대차 삼성SDI 카카오 LG생활건강 등이다. 오래된 회사는 있지만 오래된 산업은 없다.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 인터넷 등 앞당겨진 미래의 주력이 될 영역에 포진해 있다.
대기업집단을 통째로 놓고 보자. 삼성그룹은 반도체·휴대폰·가전에서 시스템 반도체·배터리·바이오로 영역을 넓혔다. ‘부동산 회사로 변신한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현대차는 전기차업체로 돌아왔다. LG그룹은 전자·배터리뿐 아니라 최근 디스플레이까지 회복되며 그룹 전체가 활기를 찾고 있다. 스마트폰은 예외다. SK는 SK하이닉스 등 기존 주력사에 더해 어느 순간부터 바이오 시장의 강자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배터리까지 더해졌다.
주가는 기업가치의 합이다.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 기업도 위기에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게 올해 증시다. 게다가 삼성, 현대차, LG가 나란히 승계 과정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성과는 숫자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혹자는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준비된 자의 성공을 행운이라고 하고, 준비하지 않은 자의 실패를 불운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진화를 거듭하며 준비한 과실을 따고 있다.
그룹을 승계받아 전면에 나선 이재용 삼성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은 더 무거운 책임을 느낄 듯하다. 이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판을 짠 것은 그들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juny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