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만 안 든 강도"…이낙연 발언에 뿔난 은행원들 [정소람의 뱅크앤뱅커]

입력 2020-12-17 11:12   수정 2020-12-17 13:39


"연수원도 내놔야 하고 금리도 입맛에 맞게 맞춰줘야 되고, 거의 뭐 칼만 안든 강도네." (블라인드 아이디 TmDXXX)

직장인 익명 앱인 블라인드 은행·금융라운지에는 16일 이같은 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날 신한 국민 하나 우리은행 등 4대 은행과의 '병상확보 협력을 위한 금융업계 화상 간담회'에서 "예대금리차(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 차) 완화에 마음을 써달라"고 주문했기 때문인데요.

이날 이 대표는 각 은행의 임원들에게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하소연이 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그분들께 금융 부담을 완화해 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 "가계부채가 사상최고인 1682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은행은 연 35조원의 천문학적인 돈을 앉아서 챙기고 있다"며 "정부가 은행의 폭리를 점검하고 대출금리를 낮춰 서민 가계의 금융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지도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은행권 종사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는데요. 마치 은행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돈 놓고 돈 먹기'를 하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는 황당하다는 지적입니다. 블라인드의 한 이용자는 "예대금리차가 나는 이유를 알고 주문을 해야지. 예금 보험료 내야지, 신보료(신용보증료) 내야지, 위험 프리미엄(대손충당금) 적립해야지, 자본 비율 준수해야지, 전산 장비 시스템 유지해야지, 점포 임차료 내야한다. 그런거 다 빼면 마진율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니?"라고 적었습니다.

또 다른 이용자도 "예대금리차 줄이면 지점 임대료와 직원 인건비도 나라에서 1/3, 건물주가 1/3 부담해 주나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진심 동네 구멍가게 수준, 그냥 예금 금리 대출금리 똑같이 해라"라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은행권에 '팔 비틀기'식 동원이 이어진 데 대한 불만도 많았습니다.한 블라인드 이용자는 "병상 확보랑 금융권은 뭔 상관"이냐며 "왜 잘못을 민간에 떠넘기느냐"고 적었습니다.

또 다른 은행원은 "금융에서 삼성 같은 기업이 절대 나올 수 없는 이유. 감 놔라 배 놔라"라고 꼬집었습니다. "세금을 줄여줘, 국회의원 급여를 줄여 줘. 아무 것도 희생하면서 사기업에 금리차를 줄이라 마라 한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대출 금리가 최근 인상된 것도 가계 부채를 축소하라는 정부 방침 때문인데 은행을 탓하는 것은 황당하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입니다.

올해 3분기까지만 해도 대출 금리는 꾸준히 떨어지는 추세였는데요. 상황이 반전된 것은 금융당국에서 대출을 조일 것을 은행에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은행이 대출 총액을 줄이려면 금리를 올리거나, 대출 한도를 축소해야 합니다. 이때문에 최근 은행들은 잇따라 대출 금리를 상향했습니다.

은행권은 올 한해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대출을 포함해 20조원이 넘는 지원을 이어 왔습니다. 이자 유예 조치로 인해 내년 상반기까지 받아야 할 이자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 병상 확보에 협력하기 위해 참석한 간담회에서조차 '예대마진 축소'라는 또 다른 숙제까지 받아들었습니다. 블라인드 은행라운지에 올라온 익명의 글들이 괜한 푸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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