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1인가구 전기요금을 올리고 전기요금에 탈(脫)석탄·태양광 확대 비용을 반영한다. 유가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연료비 연동제도 도입키로 했다. 이에 따라 2인 이상 가구의 전기요금은 내년 소폭 하락했다가 내후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전기요금 내년에 내렸다가 내후년부터 오를 듯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는 17일 이 같은 내용의 '전기요금 체계개편안 확정안'을 발표했다. 기존 전기요금 체계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친 개편안은 ①탈석탄·신재생에너지 확대 비용을 전기요금에 포함하고 ②'주택용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혜택을 폐지하며 ③유가가 오르면 전기요금을 따라 인상하고, 내리면 인하하는 게 핵심이다.복잡한 내용이지만 전기요금에 끼치는 영향만 단순하게 따지면 "내년에는 전기요금이 내려갔다가 내후년부터 계속 오른다"는 것이다. ①은 향후 전기요금을 강력하게 밀어올리는 요인이다. ②는 전기 사용량이 적은 1·2인 가구의 전기요금을 내년 하반기부터 당장 올린다. ③으로 인해 내년에는 전기요금이 내렸다가, 내후년에는 다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현행 전기요금의 모순을 고치면서도 경제 충격을 최소화한 절묘한 개편"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내년에는 전기요금을 내렸다가 이후에 탈(脫)원전·탈석탄 부담을 곱절로 떠넘기는 조삼모사"라는 비판도 있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봤다.
전기요금 개편안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니
①은 내년부터 전기요금에 비례한 탈석탄 비용(kWh/0.3원)을 더 부과하고, 전기요금에 포함돼 있던 신재생 확대 비용(kWh/4.5원)과 온실가스 감축 비용(kWh/0.5원)을 '별도 표시'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내년 소비자들이 내는 전기요금이 크게 오르는 건 아니다. 신재생 확대 비용과 온실가스 감축 비용은 기존에 포함돼 있던 비용을 표시만 하는 것이라 당장 더 내야 하는 돈은 없다. 탈석탄 비용 부담은 많아야 가구당 월 200~300원 수준이다.다만 앞으로는 전기요금이 빠르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그린 뉴딜' 및 '탄소중립 2050' 정책과 태양광 보급 확대 등으로 신재생 관련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이번 개편으로 정부가 전기요금을 통해 관련 비용을 충당할 길이 열렸다. 현재 kWh당 5원인 신재생 확대·온실가스 감축 비용은 앞으로 얼마나 오를지 예측 불허다. 정부가 예시로 든 독일은 전기요금 고지서에 신재생 관련 비용을 별도 표시하고 있는데, 관련 비용이 전체 전기요금의 4분의 1에 달한다.
②는 지난해 기준으로 총 991만가구가 4082억원의 전기요금을 할인받았던 공제 제도를 내년 7월 50% 축소하고, 내후년 7월 완전 폐지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월 200kWh 이하로 전기를 사용하는 가구에게 4000원(저압 기준)의 요금을 할인해 주는 제도다. 1인가구 등 전력사용량이 적은 가구 상당수가 이 혜택을 받아왔다. 한전은 대신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제도를 따로 마련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확보된 3000억원 이상의 재원은 태양광 확대·에너지효율 사업에 쓰기로 했다.
③은 전기요금에 전년도 유가와 직전 분기 유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역대급 저유가' 현상이 벌어진 만큼 내년 전기요금은 전반적으로 인하될 전망이다. 다만 1·2인가구는 예외다. 저유가로 인한 인하폭보다 ②로 인한 전기요금 증가폭이 더 커서다. 여기에 더해 내후년 유가가 다시 회복되면 전기요금은 오르게 된다. 고유가 때는 더 가파르게 인상된다. 정부는 각종 제도를 통해 갑자기 전기요금 폭탄을 맞게 되는 일은 막겠다는 입장이다.
기후변화 대응 위해 인상 불가피하다지만…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대응 및 온실가스 배출 저감이라는 국제 추세를 고려하면 관련 비용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의 이번 전기요금 개편도 합리적인 범위 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신재생 요금 별도부과 등은 독일과 미국 일부 주(州)등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다만 산업계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산업용 전기 평균 사용량을 기준으로 하면 기업체가 부담하는 평균 요금은 119만원이다. 여기서 기후·환경 요금은 4만8000원(4%)인데, 이 요금이 인상되면 그대로 생산 비용 증가로 연결된다. 4차산업혁명 관련 업종 등 전기 사용이 많은 업종의 경우 기업 채산성이 급전직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연료비 연동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유가가 급격히 오르더라도 산업계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인상폭을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고유가로 어려운 기업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기후변화 관련 비용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폭을 최소화하려면 에너지정책 전반을 전면 재수립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태양광은 보급보다는 R&D와 산업 생태계 구축을 집중 지원해 중국산 비중을 축소하고,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 값싼 전기로 전기요금 인상폭을 최소화하는 식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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