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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총구가 이마를 겨눴다. 죽음을 예감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과 땀으로 얼굴이 뒤범벅됐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재밌네. 기회를 줄게요.” 총을 내린 ‘한(박해수 분)’이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그가 준 시간은 5분. 그 안에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한다.
세 친구가 있었다. 일자리는 없고 물가는 매일 치솟는 극단적인 불황. 돈도 빽도 없는 청년들의 유일한 꿈은 ‘헬조선’ 탈출이다. 그러나 꿈을 위해 필요한 것도 돈이었다. 성실하게 일해선 구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하나다. 털려도 신고하지 못할 불법 도박장을 터는 것. 법 밖의 세상이 얼마나 잔혹한지는 미처 몰랐다. 헬조선 속 청년들의 불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국가가 무너진 이유는 영화 속 지나가듯 등장하는 뉴스에 나온다. “정부가 1150억달러의 부채를 상환 만기까지 갚지 못해 채무 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습니다. 국제 채권단은 정부가 요구한 부채 탕감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습니다.”
디폴트는 국가가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진 빚을 계약된 기간 안에 갚지 못해 파산한 상태를 뜻한다. 상환 기간을 뒤로 미루는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과 달리 디폴트는 채무를 아예 갚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영화 속에서는 한국이 디폴트에 빠지기 전부터 원화가치가 폭락한다. 국가 신용도가 내려가면서 외국 자본이 이미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터다. 외국 자본이 위험자산인 원화를 팔고 나가면서 원화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한다. 원·달러 환율이 폭등(원화가치 폭락)하자 은행은 환전을 금지한다. 상점들은 원화 대신 달러를 받는다. 준석이 감옥에 가기 전 금은방을 털어 숨겨놨던 돈도 휴지 조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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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의 강도 계획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도박장 주변을 대놓고 서성거리며 폐쇄회로TV(CCTV) 사진을 찍고, 군 복무 이후 잡아본 적 없는 총을 구해 사격 연습을 한다.
무모해 보이는 계획에 이들이 몸을 던진 이유를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게리 베커 교수는 범죄를 포함한 인간의 행동이 발생하는 이유를 경제학 이론으로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범죄는 인간의 합리적 의사결정 결과다. 범죄를 저지르려 하는 사람은 범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이익을 계산한다. 훔친 돈, 심리적 만족감 등이다. 동시에 범죄로 인해 치러야 할 기대비용도 따진다. 체포되고 감옥에 가는 것이다. 범죄를 통해 얻을 기대이익이 기대비용보다 크면 평범한 사람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가설이다.
영화 초반, 준석의 계획을 반대하는 기훈을 향한 장호의 대사에는 이들이 생각하는 범죄의 기대이익과 기대비용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대로 가면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어. 영원히 밑바닥 인생이야. 그런데 이번 일만 성공하면, 우리도 사람답게 살 수 있잖아. 사람답게….”
노유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yjroh@hankyung.com
② 1920년대까지 세계 4대 경제강국인 아르헨티나가 이후 모라토리엄과 디폴트 상황에 자주 놓이는 것처럼 국가채무가 갈수록 늘어나는 한국도 ‘국가부도’를 맞을 수 있을까.
③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이 ‘헬조선’이고 한국을 떠나는 것이 가장 최선의 해결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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