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지주가 내부 출신 회장을 앉히기로 했다. 농협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손병환 농협은행장(사진)을 차기 회장에 오를 단독 후보자로 선정했다. 2012년 농협중앙회의 신용부문에서 농협금융지주가 독립한 뒤 1대 신충식 회장을 제외하면 줄곳 관료 출신이 맡아온 자리다. 금융권에선 '파격'을 넘어선 '충격 인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손 후보자는 지난 3월 농협은행장에 선임된 초보 최고경영자(CEO)로 꼽히기 때문이다.
임추위는 이날 입장문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후보자 선정을 위해 내·외부 후보군의 비교 검증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경쟁 인터뷰를 통해 최종 후보자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연내 이사회와 주주총회 의결을 거치면 내년부터 손병환 호(號) 농협금융이 출범할 전망이다.
손 후보자는 1962년생으로 진주고와 서울대 농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농협 내 대표적인 기획·전략통이다. 특히 지난 2015년 스마트금융부장 재임 시 NH핀테크혁신센터 설립, 국내 최초 오픈 API 도입 등 농협금융의 디지털 그림을 그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손 후보자를 선임을 통해 농협금융이 디지털 분야에서 한 단계 더 도약을 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2019년에는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문장과 경영기획부문장을 지냈다. 지난 3월 농협은행장에 올라 최근 호실적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협중앙회 기획·전략 파트에서 오래 근무했다. 농협중앙회 종합조정실을 거쳐 기획조정실 팀장으로 발령났다. 농협의 큰 그림을 그리는 대형 프로젝트를 여럿 맡아왔다.
해체를 선언한 프로야구단 유니콘스 인수팀장을 맡기도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8개이던 야구단이 7개로 줄면 ‘홀수 팀 체제’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농민단체의 반발을 돌려세우고, 농림축산식품부와 조율해야 하는 등 과제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종적으로 인수는 무산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면서 여론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 후보자는 범(汎)농협 내부의 ‘전략가’로 꼽혔다. 합작사 설립 프로젝트 등 풀기 힘든 난제를 맡기도 했다.
농협금융의 디지털 관련 그림도 손 후보자가 그렸다는 평가가 많다. 2015년 금융권 최초로 핀테크기업 육성 조직인 NH핀테크혁신센터를 설립했다. 수수료 수익이 줄 것이라는 내부 반대를 뚫고 오픈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도 도입했다. 은행 서비스 내 연결, 이체 기능을 핀테크기업 모두에 표준화된 방식으로 공개했다.
2015년 농협은행이 출시한 오픈API 서비스는 손 후보자의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오픈API란 누구든 프로그램 개발에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 프로그래밍 명령어 묶음(소스코드)을 말한다. 은행 API를 활용하면 은행계좌 기반 간편결제 서비스, 개인 간(P2P) 금융에 필요한 서비스, 지로공과금 납부 등 핀테크 업체 서비스를 대부분 구현할 수 있다. 농협은행이 최초로 API를 공개하자 다른 은행의 API공개도 잇다랐다. 농협은행 오픈 API가 정부의 오픈뱅킹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지원하는 활동에서도 손병환 호 농협은행이 앞서나갔다는 평가가 많다. 1차 코로나19 대출 소진 속도가 빨랐고, 농업인 여신지원 등에서도 1100여개의 지점망을 바탕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금융권에 불어닥친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금융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농협금융 ESG 모델' 도입도 서둘렀다. 여신심사와 투자 프로세스를 모두 ESG를 가미한 방식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는 설명이다.
손 후보자 부임 이후 농협은행의 연체율, 고정이하여신비율 등 건전성 지표도 나아졌다. 민간은행에 비해 뒤져있다고 평가돼왔다. 올해 지역 재투자평가에선 최우수 등급을 받기도 했다.
마이데이터 사업도 손 후보자가 공들이는 분야 중 하나다. 자체 앱을 자산관리에 맞게 개편하고, 이동통신 업체와 제휴한 다양한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e커머스 업체 11번가와 핀테크 공룡으로 커가는 토스와의 협력도 강화했다. 농협은행은 최근 공공데이터를 연계한 ‘정부지원금 추천서비스’ 등도 준비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2020년도 마이데이터 실증서비스 지원사업’에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손 후보자가 회장이 되면 농협금융이 공들이는 분야인 ‘디지털 빅데이터 플랫폼’과 데이터 부문에서의 ‘범농협 시너지’도 한층 강화될 수 있다는 평가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손 후보자가 디지털 관련 사업에선 농협 내 최고 전문가인 만큼, 기존에 추진 중인 농협 유통과의 협업 사업도 훨씬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금융지주사에 끼칠 영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60년대생 행장’이 파격적으로 여겨지던 보수적 금융권에서 1962년생인 상대적으로 젊은 회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금융 임추위는 결국 농협중앙회장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며 “젊고 디지털에 밝은 회장 후보를 뽑은 건 범 농협 차원에서 그만큼 혁신 의지가 크다는 점을 나타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1962년 경남 진주 출생
△1981년 진주고 졸업
△1988년 서울대 농업교육학과 졸업
△1990년 농협중앙회 입사
△2005년 기획조정실 팀장
△2015년 스마트금융부장
△2016년 농협중앙회 기획실 실장
△2019년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문장
△2020년 경영기획부문장
△2020년 3월 농협은행장
△2020년 12월 농협금융지주회장 단독 후보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