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벼랑끝 쌍용차, 또 '정치적 해법'으로 흘러선 안 돼

입력 2020-12-22 17:46   수정 2020-12-23 00:16

쌍용자동차가 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빠져들면서 정치논리에 휘둘린 기업 구조조정의 위험성을 재차 입증했다. 2009년 당시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노조가 ‘옥쇄 파업’으로 맞서며 경제에 큰 주름을 지웠던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이제 5000여 임직원은 물론이고 협력사 가족을 합쳐 총 64만여 명이 다시 생계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쌍용차의 법정관리 신청은 노사·채권단, 정부·정치권이 모두 11년 전의 악몽과 실패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2009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을 새 대주주로 맞은 뒤 쌍용차는 2016년 한 해 ‘반짝 흑자’를 냈지만 이후 15분기 내리 적자 행진이다. 이렇다 할 신차를 내놓지 못해 르노삼성과 한국GM에도 밀리며 시장점유율도 5위로 추락했다. 이런 최악의 경영난에도 제대로 된 구조조정 없이 지난 5월에는 11년 전 부도 당시 해고자의 전원복직 조치까지 끝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거대 귀족노조, 그리고 성과내기에 급급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주도한 기막힌 역주행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도 정치적 해법의 과잉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쌍용차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아 개입 근거가 약하다. 오래전에 ‘좀비기업’으로 전락한 탓에 코로나로 인한 기간산업 지원 대상에 넣기도 힘든 회사를 ‘묻지마 지원’하는 것은 묵묵히 달려온 수많은 성실한 기업들의 기회를 뺏는 불공정에 다름 아니다.

다행히 서울회생법원은 ‘3개월 동안 회생절차 개시를 보류해 달라’는 쌍용차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기간 동안 채권단 신뢰를 회복하거나, 새 주인을 찾으면 회생절차에 들어가지 않고 정상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뼈를 깎는 노사의 자구노력과 정치권의 자성이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미래차 경쟁 속에 언제 내연기관이 사라질지 모르는 판에 무차별 혈세 지원은 더 큰 혼란과 트라우마를 자초할 뿐이다. 마힌드라는 올 들어 약속했던 2300억원 투자를 철회하며 한국 정부의 지원을 노골적으로 압박 중이다. 정부가 쌍용차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국고를 제 주머니처럼 여기는 부실기업과 무책임한 외국인 투자자에게 정부와 국민이 호구 잡히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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