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W 집행부의 부정부패가 오랫동안 대규모로 지속돼 온 요인으로 ‘지배구조 불투명성’이 꼽힌다.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UAW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면서 조합원이 급감하고 있는데도, 집행부는 이런 상황을 되레 ‘이권 놀음’의 호재로 삼았다. 1970년대 150만 명에 달했던 조합원 수가 30만 명대(지난해 현재)로 쪼그라든 것은 UAW의 업보(業報)다. 최대 사업장인 제너럴모터스(GM)가 2008년 파산하면서 드러난 노조의 ‘철밥통 모럴해저드’가 추락에 불을 댕겼다.
GM 노조는 전성기였던 1950년 이끌어낸 “조합원이 퇴직한 이후에도 회사가 연금과 건강보험료를 대신 납부한다”는 합의조항을 경영위기 상황에서도 유지하려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GM이 1993년 이후 15년 동안 퇴직자 연금과 건강보험료로 지출한 돈만 1030억달러(약 115조원)에 달했다. GM 파산 당시 연금과 무상 건강보험 혜택을 받은 퇴직자 수는 40만 명이었다. 현역 근로자(18만 명)의 두 배를 넘었다. 이런 회사를 살리기 위해 거액의 공공자금을 투입하는 데 미국인들은 분노했다. 외국 자동차회사들이 새 기술과 디자인을 앞세워 미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었지만, GM은 노동자 퍼주기의 덫에 걸려 에너지를 소진했다.
‘밑바닥’을 드러낸 노조에 미국인들은 철저히 등을 돌렸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구원투수’로 등장한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무(無)노조 경영’을 선언했지만, UAW가 얼씬도 하지 못하는 이유다.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넷플릭스 등 미국의 다른 업종 간판 기업들에서도 노조의 존재를 찾아보기 어렵다. 1886년 5월 1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와 함께 세계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됐던 미국에서 노조가 추락을 넘어 부패와 타락의 온상으로까지 전락한 것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한때 초강경 파업투쟁의 본거지로 꼽혔던 일본 노조의 변신도 극적이지만, 미국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매년 봄 주요 사업장의 전국단위 동시파업(춘투·春鬪)으로 회사 측을 압박하며 종신고용과 호봉제를 관철시켰던 일본 노조의 기세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일본 최대 자동차회사인 도요타 노조가 지난 10월 경영진과 합의한 새로운 임금제도는 ‘환골탈태한 일본 노동운동’의 전형을 보여준다. 내년 1월부터 연공서열에 의한 급여체계를 전면 폐지하고 오로지 개인별 성과에 의해서만 임금 인상폭을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도요타 노사가 ‘일본식 경영의 본산’이라는 자부심을 접고 100% 개인성과급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산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니혼게이자이신문 10월 7일자 사설)이었다. 사측은 대신 노조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고 ‘일하는 방식 개선’을 통해 개인 생산성 제고를 돕기로 했다. 전기차를 넘어 수소차 시대가 예고된 ‘졸면 죽는’ 자동차산업 급변 상황에서 노동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도요타 노조는 외면하지 않았다.
엇갈린 길을 걷고 있는 두 나라 노조에 한국 노조의 요즘 행보가 겹쳐진다. 생산 및 판매 부진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국내 자동차회사 노조들이 호봉제 고수에 더해 일률 임금 인상까지 요구하며 올해도 파업을 되풀이했다. 최대 노조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새 위원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후보자들의 온갖 선거부정 행위로 내부 고발 등 진통을 겪고 있다. 지도부를 장악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기에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지만, 미국 UAW의 추악하고 초라한 추락에서 교훈을 새겨야 할 것이다.
hak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