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핵심 축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법안이 의원 입법으로 마구 발의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그 빈도가 부쩍 잦아진 것도 사실이다. 1개월 이상만 일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안부터 전통시장 경계로부터 20㎞ 안에 대형마트 입점을 금지하는 법안 등 ‘아무 말 대잔치’ 수준의 의원 입법안이 즐비하다.
충분한 여론수렴과 정밀검토 없이 입법 건수경쟁을 벌인 탓이다. 21대 국회 들어 6개월여 동안 제출된 의원 입법안만 5123건에 달한다. 의원 300명이 1인당 17건꼴이다. 이 속도라면 21대에서의 의원 발의건수가 20대(총 2만3047건)의 두 배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게 의원 입법안이 쏟아지다 보니 위헌 소지가 다분한 ‘황당 입법안’이 난무하는 것이다.
의원 입법안의 상당수가 과잉 규제를 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의원 입법안은 정부 입법안과 달리 규제영향 평가 등을 거치지 않는다. 민간을 규제하는 법안을 아무 여과장치 없이 양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동료 의원 10명의 동의만 받으면 하루 만에도 법안을 낼 수 있다. 부실 입법이 될 개연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법안 자체가 엉성해 정부의 시행령과 유권해석이 더 중요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토교통부가 해설집을 세 번이나 낸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그랬다. 법 적용에 정부 재량권이 커진다는 건 법치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의원 입법의 폐해가 큰 만큼 입법시스템 자체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의원 입법안도 규제영향 평가를 받도록 하든지, 아니면 국회입법조사처 등 전문기관의 검증을 의무화해 졸속 입법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일각에선 아예 의원 1인당 입법건수를 제한하자는 제안까지 나올 정도다. 부실 입법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진정 국민을 위한 국회라면 스스로 의원 입법제도 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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