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 논의와 관련해 “여당 안부터 먼저 정리해오라”고 더불어민주당에 요구했다. 민주당이 당장 국회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본격적인 심사를 시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한 응수다. 국민의힘은 법 제정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일부 조항에 대해 “법체계를 완전히 뒤흔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3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대재해법에 대해 “법안이 여러 개 있고 민주당에서 낸 것만 해도 3개나 있다”며 “민주당이 먼저 단일 안을 만들어야 우리도 논의에 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개별 법안을 일일이 (상임위에서) 논의할 수는 없다”고 했다.
민주당이 중대재해법의 임시국회 내 처리를 강조하면서 야당의 참여를 요구하자 먼저 여당 단일 안부터 만들어오라고 맞받은 것이다. 이날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오전 회의에서 해당 법안에 대해 “쟁점이 아주 많아 시일이 촉박하다. 오늘부터라도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심사가 열리도록 국민의힘의 협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중대재해법은 민주당 소속 박주민·이탄희·박범계 의원이 각각 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국민의힘(임이자 의원), 정의당(강은미 의원) 안까지 총 5건이 계류돼 있다. 민주당은 지난 17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고 주요 쟁점에 대해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담당 상임위인 법사위로 공을 넘겼다. 각 의원 안마다 인과관계 추정과 공무원 처벌 등 세부 조항에서 차이가 크고 일부 처벌 조항은 야당 안의 수위가 더 높다.
민주당은 24일 법사위 법안소위를 열어 본격적인 심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민주당 소속인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야당과 협의는 시도하되 협의가 안 되면 (단독으로) 일정을 잡아서라도 할 것”이라며 “제정법인 데다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아 법안소위를 두세 차례 더 열어야 한다”고 했다. 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민주당이 깜깜이로 날치기 처리하려는 법안 논의에 들러리 서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한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법률 체계상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제실의 공식적인 결재를 받지 못했고, 나머지 법안들 역시 법제실의 입안 결재를 거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통상 중대재해법 같은 제정법을 만들 때는 국회 법제실의 사전 심의를 받는다.
최근 여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 강행 처리에 항의해 법사위 사임계를 제출한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중대재해법 일부 조항을 거론하며 “책임주의를 완전히 벗어나는 조항들은 손을 봐야 한다”며 “중소기업들은 이 법안을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이 안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법사위에서 논의할 상황이 되면 해야 하겠지만 책임주의가 무너져버리면 법치가 흔들리게 된다”고도 지적했다.
한편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정의당 농성장을 찾아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고(故)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를 만나 단식농성 중단을 권유했다. 정의당과 산업재해 피해자 유족들은 중대재해법 제정을 요구하며 13일째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 중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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