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창조적 이론'이 시장 혁신 이끈다

입력 2020-12-24 17:31   수정 2020-12-25 02:06

19세기까지만 해도 현실을 측정하고 예측하는 일에 머물렀던 대다수 경제학자의 역할은 최근 50년 동안 혁명적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단지 경제이론을 개발해 시장을 분석하는 일에서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사고 상호작용하는 일, 다시 말해 시장을 설계하는 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혁명적 변화를 이끈 것은 그사이 등장한 수많은 혁신기업이다. 이들은 전통적 거래방식과 원리부터 시장 형태까지 완전히 바꿔놨다. 전 세계 사람들은 이제 에어비앤비를 통해 방을 예약하고, 우버를 통해 차를 빌리며,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다. 대개는 이런 변화를 기술 발전 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 보스턴대 행동경제학 교수인 레이 피스먼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출판부 상임이사인 티머시 설리번은 “이 같은 기술결정론은 여러 요소 중 한 가지일 뿐 더 근본적 요인은 따로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의 변화와 혁신을 이끈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창조적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두 사람이 쓴 《시장의 속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발표된 경제학 논문을 찾아 거기에 담긴 획기적 발상들을 소개한다. 단지 현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발상들이 어떻게 현실에 개입하고 시장을 설계해 우리 삶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저자들은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저자들은 여러 혁신적 사고로 시작한 이론들을 바탕 삼아 현대경제학의 핵심 원리와 시장화를 깊이 있게 설명한다. 예컨대 리처드 래드퍼드의 논문 ‘포로수용소의 경제적 조직’을 통해 포로수용소 안에서 생겨난 시장을 언급한다. 저자들은 수용소 내 시장이 포로들의 안락과 생명까지 구함으로써 개인이 자기 이익을 추구해도 결국 공익을 촉진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모든 사람의 후생이 향상된다는 빌프레트 파레토의 ‘파레토 효율’에 근거한 자유시장의 원리와 위력을 논증한다. 또 폴 새뮤얼슨의 《경제 분석의 기초》를 통해 경제학이 더 이상 말이나 추측이 아니라 수치와 공식에 근거한 과학적 학문임을 증명한다. 조지 애컬로프의 《‘빛좋은 개살구’ 시장》을 소개하며 중고차 시장에서 구매자보다 판매자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정보 비대칭’과 ‘역선택’이 시장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음을 밝히기도 한다.

저자들은 현재 시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장을 만악의 근원으로 보는 ‘시장 혐오주의’와 시장을 만병통치약으로 보는 ‘시장 근본주의’다. 저자들은 “시장 혁명은 사고방식과 생활방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까지 바꿔놓을지 모른다”며 “책을 통해 시장에 이용당할지 시장을 이용할지에 대해 매 순간 합리적 선택을 내릴 힘과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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