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박스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모래 놀이터(sandbox)처럼 기업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 또는 면제해주는 제도다. 세계 각국에서 샌드박스 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대한상의와 같은 민간 기관이 샌드박스 신청을 도맡아 처리해주는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
박 회장은 지난 23일 출입기자단과의 송년 인터뷰에서 “민간 샌드박스 출범 후 200여 일간 84건을 처리했을 만큼 바쁘게 일했다”며 “신청 서류를 줄세우면 상의가 있는 남대문에서 국회까지의 거리인 6.5㎞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샌드박스 제도에도 한계는 있다. 현행 법령이 불합리하지만 법을 바로 바꿀 수 없으니 임시로 테스트해보자는 것이 샌드박스의 골자다.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관련 법령이 정비되지 않으면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대한상의는 이 점에 주목해 민간 샌드박스 출범 초기부터 국회의 문을 두드렸다. 박 회장은 “샌드박스 승인기업 대표들과 함께 해당 사업의 법안을 다루는 상임위원장과 간사를 찾아 조속한 법령정비를 부탁했다”며 “국회 안에서만 하루에 7㎞를 걸은 날도 있다”고 말했다.
대기환경보전법 개정 과정에서도 대한상의가 거간꾼 노릇을 했다. ‘폐배터리를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하는 데 성공했다. 법 개정으로 배터리 재활용 사업의 근거가 마련됐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평가다. ‘택배알바 안심보험’ 같은 생활밀착형 미니보험을 적은 자본으로 출시할 수 있게 한 보험업법 개정안, 공인인증서의 독점적 지위를 폐기해 민간 인증서 춘추전국시대를 열게 한 전자서명법 개정안 등도 대한상의가 개정을 설득한 법안으로 꼽힌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며 “내년엔 가사도우미 스타트업을 합법화할 수 있는 가사근로자법(가칭) 제정,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해외진출법 개정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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