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요 기업 총수들의 신년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점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가 성장한 건 사회가 허락한 기회와 응원 덕분"이라며 "기업이 받은 혜택과 격려에 보답하는 일에는 서툴고 부족했다. 이런 반성으로부터 기업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고객과 사회로부터 받은 신뢰를 소중히 지켜나가고, 긴 안목으로 환경과 조화로운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속가능 경영을 글로벌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화해나가는 동시에 경영활동 면면에서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신년 화두로 '사회적 책임'을 내세운 것은 ESG가 글로벌 경영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기업의 비(非)재무지표를 말한다. 이 ESG가 재무지표와 함께 기업을 평가하는 핵심 잣대로 부상하고 있다. 환경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기업, 즉 ESG 지표가 높은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 규모가 작년말 45조 달러(약 5경 원)에 달했고 애플 등 일부 미국 기업은 협력사에 ESG 성과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유럽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탄소세 폭탄'을 떨어뜨릴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이제 ESG는 '하면 좋은 것'에서 '반드시 해야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장)는 것이다.
ESG 경영이 '발등의 불'이지만 한국 기업의 ESG 경쟁력은 그리 높지 않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2019년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BBB) 현대자동차(B) SK하이닉스(BB) 포스코(BBB) 등의 ESG 등급은 'B급'이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제조업 중심이다 보니 환경(E) 부분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투자와 생산이 늘면 늘수록 오염물질 배출량이 늘어 ESG 점수는 더 떨어지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실제 2017~2019년 국내 주요 20개사중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기업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아홉 곳에 그쳤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등은 오히려 배출량이 20~40%씩 늘었다.
ESG는 이제 기업의 생존 키워드가 되고 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ESG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그룹 등은 이미 전담조직을 꾸리고 ESG경영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 SK는 2019년부터 각 계열사의 ESG 활동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해 평가에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올해 주요 기업 총수들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ESG경영을 강화할 뜻을 분명히 한 만큼 이런 추세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동안 어떤 환경변화에도 빠르게 적응해온 한국 기업의 스피드·혁신DNA가 ESG경영 시대에도 빛나길 기대해 본다.
차병석 논설위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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