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말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현금성 자산(현금+현금성 자산+단기금융자산)은 533조6792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작년 1~9월에만 85조원 늘었다. 2019년 한 해 늘어난 22조원의 약 네 배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현금 확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자금 조달도 늘어 3분기까지 총차입금은 134조1594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81조7330억원)보다 64.1% 많았다. 삼성전자의 3분기 말 보유 현금은 116조2601억원으로 2019년 말보다 약 13조원 늘었다. 현대차(18조492억원) 포스코(17조7290억원) SK(15조91억원) 기아차(14조3172억원) LG전자(6조6597억원) 현대건설(5조5436억원) 한국조선해양(4조8340억원) 등도 현금을 두둑이 쌓았다. 언제든 대형 M&A가 성사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의미다. IB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업종별 양극화가 뚜렷해지자 기업들이 M&A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완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같은 산업 내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면서 매물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대기 중인 대어들도 적지 않다. 한앤컴퍼니가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 공조회사 한온시스템은 10조원 이상의 몸값을 받을 수 있는 매물로 평가받는다. 배달의민족을 인수한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매물로 내놓을 요기요(2조원 이상)는 M&A 결과에 따라 유통업의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는 물건이다. 두산공작기계(2조원), SK루브리컨츠 소수지분(2조원) 등도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나 기업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매각되는 기업 지분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대글로비스가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분 10% 등에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이 벌써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등 코로나19 불확실성으로 지난해 매각이 성사되지 않은 물건들은 올해 다시 시장을 달굴 것으로 보인다. 주요 기업은 올해 화두를 M&A로 잡고 작년 말 인사에서 관련 전문가들을 전진 배치했다.
M&A 붐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글로벌 IB업계에선 올해 M&A 시장 규모가 2006~2007년 이후 최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4분기에만 1조3000억달러(약 1409조원) 규모의 M&A 거래가 발표됐다. S&P글로벌의 IHS마킷 인수(435억달러), NTT의 NTT도코모 공개매수(403억달러), 아스트라제네카의 알렉시온 인수(391억달러), 엔비디아의 ARM 인수(345억달러), AMD의 자일링스 인수(327억달러), 세일즈포스의 슬랙 인수(258억달러) 등이다.
임근호/이상은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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