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에도 정부의 부동산 통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6일 "현실과 괴리가 있는 부동산 통계에 대해 국민적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면서 "통계청이 청와대와 국토교통부의 눈치를 보느라 정확한 지적을 하지 못하고 해당 통계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밝혔다.
최근 통계청이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대해 현실성 부족 등 통계적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품질진단 점수로 100점 만점에 98.6점을 준 데 대해 비판한 것이다.
실제 한경닷컴 뉴스랩이 한국부동산원과 KB부동산의 월간 주택가격동향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2월 한국부동산원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8억9310만원으로 KB시세(10억4299만원)보다 1억4989만원 낮았다. 이로써 두 지표 간 격차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초 까지만 해도 두 지표의 차이는 크지 않았으나, KB시세는 한해 동안 19.9% 상승하는 동안 한국부동산원 시세는 1.8% 상승에 그치면서 격차가 커졌다.
유 의원의 지적처럼 그동안 정부 통계는 민간 통계 보다 줄곧 낮거나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면서,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는 연초가 되면 KB시세와 격차를 좁히다 연말에 가까울수록 격차를 벌리는 패턴을 최근 4년간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시세가 시장 상황 보다 늦게 움직이면서, 시간 차이를 두고 한국부동산원 통계가 KB시세를 뒤쫓아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한국부동산원은 신년부터 주택가격조사 시 조사 대상인 표본을 크게 늘리는 등 방안을 통해 정부 통계에 대한 신뢰 회복에 나설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통계 재설계 시 어떤 아파트를 표본에 포함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당부하고 있다.
지난 상반기에 두 지표 간 격차는 5000만원 안팎 수준이었다. 지난해 1월에만 한국부동산원 통계가 716만원 높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2016년 1월 이후 매달 KB시세가 높았다. 하반기에 들어서는 7월 6849만원으로 늘어나더니, 9월에는 처음으로 1억원 이상 격차를 보였다. 이후 매달 조금씩 늘어나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1억5000만원 가까이 차이가 벌어졌다.
이렇게 두 지표 간 격차는 연초에 현저히 줄어들다 연말에 다가올수록 격차가 크게 커지는 현상을 2017년부터 되풀이하고 있다. KB시세는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한편, 정부 통계는 12월과 1월에 갑자기 가격이 뛰면서 계단식으로 상승하면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세 변화를 뒤늦게 반영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두 지표간 격차는 집값이 비교적 안정됐던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크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부동산원 통계가 KB시세를 앞서기도 했다. 2013년 4월부터 2015년 12월까지는 한국부동산원 통계가 KB시세 보다 400만~3000만원 가량 더 높았다. 이 기간 KB시세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값 상승률은 2000만원, 한국부동산원은 50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6년 1월 이후부터 KB시세가 한국부동산원 시세를 추월했고 2017년 이후 부동산 값 상승이 본격화되면서 격차는 1억원 이상 벌어진 것이다.
최근 몇년 간 정부 통계가 민간 통계를 후행하는 경향성을 보이는 이유는 표본의 차이 때문으로 진단된다. 가격 반응이 늦는 표본이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더 많다는 지적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KB시세가 한국부동산원 시세 보다 앞서는 시차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표본 성격에 따라 가격 상승기에 정부 통계가 다소 낮게 산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부동산원은 이번달부터 주택통계 지수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표본 수를 민간 통계와 비슷한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월간 아파트 가격 조사에서 부동산원 통계 표본은 1만7190개, KB시세는 3만6300개로 KB시세가 2배나 더 많아왔다.
통계학적으로는 표본이 많을 수록 시장 상황을 잘 반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로 거래되는 지역, 평수대 매물에 가중치를 두는 등 거래량 비중을 감안한 표본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아파트 가격 등락 추이를 제대로 나타내줄 수 있는 표본이 아니면, 단순히 표본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시장을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는 말이다.
영국 경제연구소 IFS(Institute for Fiscal Studies)도 '주택 가격 산정 방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서로 다른 주택 유형에 따라 가격 상승률은 달라질 수 있다"며 "주로 거래되는 주택 혹은 가장 대표성 있는 주택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할 작업"이라고 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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