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만대도 못 팔았다…멸종 위기 놓인 '경차'

입력 2021-01-06 11:29   수정 2021-01-06 11:35


지난해 경차 판매량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존속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6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와 국내 완성차 5사에 따르면 지난해 경차 내수 판매량은 9만7072대에 그쳤다. 경차 기준이 바뀐 2008년 이후 처음으로 10만 판매량 선이 붕괴된 것이다.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의 수입 경차 집계까지 포함해도 지난해 판매량은 9만8743대에 그쳤다. 사실상 국내 경차 시장은 기아 '레이'와 '모닝', 쉐보레 '스파크', 르노삼성 '트위지' 등 4개 차종이 점유하고 있어 수입 경차의 비중은 극히 낮다.

한때 신차 5대 중 1대가 경차일 정도로 '국민차' 위상을 누리던 경차 시장은 2012년 20만2844대까지 뛰어 오른 뒤 8년 연속 내리막이다. 2019년에는 판매량이 11만5262대까지 밀리면서 10만 판매량을 간신히 사수했지만 지난해는 내수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에도 기를 펴지 못하면서 결국 9만대 선으로 물러났다.

차박(차+숙박) 열풍에 힘입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인기와 세제 혜택 감소가 경차 쇠퇴의 원인으로 꼽힌다. 2012년 연간 판매량이 6000여대에 불과했던 소형 SUV 시장은 지난해 45배 커진 27만대 수준으로 성장했다.

2018년 연간 판매량과 비교해도 2년 만에 판매량이 61% 늘었다. 경차보다 넓은 실내 공간과 안정적인 승차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경차 가격이 꾸준히 상승한 점도 소형 SUV에 힘을 더했다. 최근 경차 가격은 안전·편의사양이 추가되면서 소형 SUV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 됐다.

풀옵션 기준 기아차 모닝 가격은 1800만원대에 달한다. 이는 1600만원대 현대차 소형 SUV 베뉴 기본 모델보다 비싼 것은 물론, 100만원 정도 더 얹으면 1900만원대 기아차 소형 SUV 셀토스도 넘볼 수 있다.


경차가 그간 누렸던 각종 세제 혜택도 줄었다. 2019년부터 취등록세 면제 혜택이 사라졌고, 경차의 전유물이었던 개별소비세 감면도 현재 모든 차량에 적용되고 있다.

공영주차장 할인과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등의 혜택도 조만간 축소될 위기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는 경차 중심이던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을 전기 및 수소차 등 친환경차 중심으로 전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년 사이 경형·소형·중형·대형차 등 모든 차급을 통틀어 한 차급의 연간 판매량이 10만대 밑으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장 규모가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들며 경차가 존속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를 산다.


완성차 업체들이 대당 수익성이 낮은 경차 대신 소형 SUV에 집중하면서 신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5월 기아차 모닝이 부분변경 모델로 출시된 것이 전부다. 올해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등 친환경차 출시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신차 5대 중 1대는 전기차일 정도다. 경차 시장이 외면받을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경차 시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환경·SUV에 초점을 맞추고 경제성을 높여야 한다고 진단한다. 좁은 골목길이나 주차장 등 국내 주행 여건에서 경차가 가진 장점은 유효한 만큼, 높아진 SUV 수요에 맞춰 경형 SUV를 선보이고 연비는 높으면서 배출가스를 줄인 파워트레인을 탑재하면 소비자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소득 수준 증가에 따른 큰 차 선호 현상이 나타났지만, 주차 공간 등 경차가 국내 시장에서 유리한 부분은 적지 않다"며 "운전이 쉽다는 기존 경차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단점을 보완하면 충분히 시장이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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