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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건설현장만 12만 곳에 달합니다. 본사에 있는 경영자가 어떻게 모든 현장의 사고를 일일이 챙길 수 있겠습니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중단을 다시 한번 호소합니다.”(김상수 대한건설협회장)
여야가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경제단체들이 마지막 호소에 나섰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해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대한건설협회 등 10개 경제단체는 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중단하거나 적어도 보완책이 반영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단체들은 법 제정을 중단할 수 없다면 최소한 보완책이라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우선 사업주에 대한 징역 하한 규정을 상한 규정으로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현장 관리자 등 직접적 연관성이 있는 사람보다 간접 관리책임자인 사업주를 더 과도하게 처벌하는 것은 법리적 모순이라는 이유에서다.
중대재해로 인한 사업주 처벌 기준도 ‘반복적인 사망사고’로 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 규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이 의무를 다했을 때는 면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김기문 회장은 “그동안 경제단체가 이례적으로 수차례나 모여 법 제정에 따른 기업인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건 이 법안의 문제점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라며 “국회가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을 잘 헤아려 법안에 반영해 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한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기업을 30년 경영했지만 이 같은 악법은 처음 본다”며 “노조만 국민이고, 기업인은 국민이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 대표이사의 99%가 오너인데, 사고가 날 때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혹한 형사처벌을 내리면 대한민국에서 기업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김임용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은 “소상공인 대부분은 중대재해 발생 시 뒤따르는 변호사 선임비도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정치권에서 이런 현실이나 알고 법 제정을 밀어붙이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중소기업계에선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 대상이 되는 대표이사 및 안전담당 이사 기피증에 따른 구인난도 호소하고 있다. 뿌리기업을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여러 명의 대표이사를 사장 혹은 부사장으로 둔다거나 오너가 회장직으로 빠지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하도록 내모는 법안”이라는 지적이다. 한 건자재업체 사장도 “연간 산재 사망자가 여러 명 나오는 대형 건설사의 경우 사고가 날 때마다 사장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최소 다섯 명 이상 예비 사장 후보군을 양성해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기계업종의 한 기업인은 “중소기업인이 전과자가 되면 입찰에서 악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대기업과의 거래 관계가 끊기고, 은행에서도 대출 회수 등으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기업이 망하면 어떻게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가 늘어나길 기대하겠냐”고 반문했다.
이정선/안대규 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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