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지수 1000 달성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코스피지수는 1980년 1월 4일 100을 기준점으로 9년 만인 1989년 3월 31일 1003.31로 마감하며 종가로는 처음 1000선을 돌파했다.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3저(低) 호황’에 경제가 성장하며 건설, 금융, 종합상사가 주도주 역할을 했다. 이들 업종은 ‘대중주’(유통주식 수가 상대적으로 많고 가격이 저렴해 소액투자자 지분이 높은 주식)로 불렸다. 외국인 투자가 불가능했고 3개의 신탁운용사만 있던 시절이다. 당시 시가총액 1위는 국민주 1호 포항종합제철이었다. 한일은행, 제일은행 등 은행주는 2~6위에 자리했다. 삼성전자, 금성사, 현대건설 등도 10위권에 있었다.
1000에서 2000까지 가는 데는 18년이 걸렸다. 중간에 외환위기, 닷컴버블 붕괴 등 굵직한 암초들이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았다. 2005년 하반기 1000을 회복한 코스피지수는 2007년 7월 25일 2004.22로 종가 기준 2000선을 돌파했다. ‘차이나플레이(중국 효과)’ 관련주가 부상했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한국 기업 수출이 늘자 중공업, 화학 등이 증시 주도주가 됐다. 미래에셋이 일으킨 펀드 열풍도 증시 상승에 한몫했다.
종목으로 보면 삼성전자가 부동의 1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포스코 한국전력이 2, 3위에 있었고, 현대중공업 현대차 하이닉스 등 중국 관련주가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코스피 2000 시대는 짧았다. 2000을 뚫은 지 1년 만에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2008년 10월 말 1000선도 내줬다. 이후 2년에 걸쳐 코스피지수는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1700에서 2200 사이에서 움직이는 박스권 장세가 지속되며 ‘박스피’라는 오명을 얻었다.
코스피지수는 2000을 넘은 지 13년6개월 만인 2021년 1월 6일에야 장중 3000을 넘겼다. 2007년 공모펀드로 간접투자에 나섰던 개인들은 2020년 들어 직접투자로 선회하면서 역대 최대 순매수세를 보여주고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센터장은 “1980년대에는 실물경제 성장률, 금리, 임금 상승률이 모두 높았기 때문에 부를 축적할 수단이 많았다”며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이 증시로 몰리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기업들이 3000 시대의 주역 역할을 했다. 전경대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2000 돌파 시점과 3000 돌파 시점의 시총 상위 기업 구성이 현저히 달라지지는 않았다”면서도 “그 와중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기업들이 삼천피 시대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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