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사들인 ‘너무 오래 존재하는 것들’과 결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모든 것을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김영하 작가가 산문집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 적은 문장이다. 해외 근무를 떠나기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면서 그는 “달려드는 물건들에 질려버렸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 사회는 다른 이유로 ‘정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이었다. 잠만 자던 집에서 삼시세끼는 물론 업무까지 해야 했다. 집안 곳곳 무심코 지나치던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인기 예능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는 버리고 싶은 충동을 자극했다. 리모델링을 한 것도 아닌데 집이 극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해보자’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네이버에서는 ‘정리’ 키워드 검색량이 늘었고, 온라인 쇼핑몰에선 수납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당근마켓은 정리하는 보람까지 선사했다. 그곳에는 ‘정리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들의 전리품이 넘쳐난다. 국내 중고거래 시장은 지난해 2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정리 열풍은 소비 천국의 반작용이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물건을 사들이며 살아왔다. 대량 생산한 값싼 물건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미국 여론조사회사 얀켈로비치에 따르면 현대인은 하루평균 약 5000개의 광고를 본다.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면 콘텐츠를 가장한 ‘취향 저격’ 광고가 따라다니며 유혹한다. 광고는 물건을 사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광고 속 그 물건은 편리하게도 클릭 한 번으로 다음날 아침 집 앞에 도착한다.
누구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산 경험이 있다. 그렇게 하나둘 사들인 물건이 좁은 집안 곳곳을 점령해버렸다. 갖고 있는지도 망각한 채 또 산 똑같은 옷과 책, 쓰지 않고 방치해둔 전자제품과 운동기구, 그리고 영원히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다양한 물건들.
정리 관련 서적들은 한결같이 ‘정리의 힘’을 설파한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다, 정리를 하면 부자가 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정리를 잘한다” 등등. 맞는 말이다. 정리가 주는 선물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습관이다. 버리고 또 사는 것은 왠지 양심에 걸린다.
하지만 정리를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정리의 가장 큰 효용은 ‘치유’라는 것을. 물건이든 마음이든 무질서한 삶의 기록들을 지우고 비워내면 그 빈공간을 미래로 나아갈 새로운 에너지로 채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새해, 정리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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