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벤처 생태계에 유의미한 제도 변화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 숙원사업인 민간 중심 벤처기업확인제도가 다음달 시작되면 혁신적이면서도 뛰어난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여러 벤처기업이 등장하고 창업과 성장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했다.
덕분에 임기를 한 달여 남긴 현재 벤처기업협회장으로서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 명의 벤처인으로선 큰 안타까움이 남아 있다고 했다. 안 회장은 “2020년은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대등한 입장에서 상생을 도모하는 한국형 혁신벤처 생태계의 희망을 보여준 해이기도 하다”며 삼성을 예로 들었다.
그는 “2019년 7월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가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면서 시작된 삼성과 벤처·중소기업 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를 위한 상생이 지난해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과 중소 협력사들의 관계가 전례없이 대등하고 수평적인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한국형 혁신벤처 생태계를 온전히 구현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이를 체감하고 공감하기 때문에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 최후진술에서 “중소기업, 벤처기업, 학계와 유기적으로 협력해 우리 산업 생태계가 건강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동반성장 의지를 강력히 나타냈다.
대기업 생태계와 벤처 생태계가 화학적으로 잘 결합돼야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안 회장의 지론이다. 그는 “세계 최고 혁신벤처 생태계를 보유한 이스라엘의 많은 벤처기업가는 한국과 같은 대기업 생태계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미국에서 뜻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온전한 한국형 혁신벤처 생태계가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할 것 없이 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기만 한다면 산업 경쟁력 제고에 따른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안 회장은 “삼성이 이 같은 상생 생태계에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의사결정은 삼성그룹 오너인 이 부회장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선 진정한 상생 동력을 바라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안 회장은 이날 벤처기업협회 회장 자격으로 이 부회장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안 회장은 “잘못을 눈감아주자는 게 아니라 기회를 주되 눈을 부릅뜨고 냉철하게 감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라고 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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