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갑질금지법'이 시행된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갑질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27%는 지난 1년간 갑질을 당했고, 84%는 한국 사회의 갑질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갑질 피해자 대부분은 불이익이 두려워 그냥 참고 있었다.
국무조정실은 13일 갑질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알앤알컨설팅주식회사가 작년 11월 29일~12월 2일 만 19~69세 남녀 1500명을 상대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2.5%포인트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26.9%가 "지난 1년간 갑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의 갑질이 심각하다"는 답변은 전체 83.8%에 이르렀다. 정부는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 일명 직장 갑질금지법을 시행하고, 다음달 '부문별 갑질 근절 추진방안'을 수립, 시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의 갑질이 근절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다만 갑질 경험 응답은 2019년(29.3%)보다는 다소 줄었다. 갑질이 심각하다는 답변도 2019년(85.9%)보다 약 2%포인트 감소했다.
갑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직장이었다. 갑질 경험자에게 "어떤 관계에서 갑질이 일어났냐"고 물으니 32.5%가 "직장 내 상사-부하 관계"라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이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괴롭힘법은 피해를 주장한 직원에게 불이익을 준 사업주는 처벌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다.
'본사-협력업체 관계(20.8%)', '공공기관-일반 민원인 관계(15.5%)', '서비스업 종사자-이용자 관계(13.7%)' 등에서도 갑질이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규직-비정규직 관계(5.8%)', '학교 선배-후배 관계(3.5%)' 등 관계를 지적한 응답도 있었다.
갑질을 당해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갑질을 당했을 때 대처 방안으로 "그냥 참았다"는 응답이 70.1%에 달했다. 참은 이유로는 "피해·불이익이 염려돼서(39.6%)", "내가 대처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34.7%)", "그동안의 관행이라고 생각해서(8.9%)" 등이 제시됐다.
응답자 40.7%는 갑질 발생 원인으로 '권위주의 문화'를 꼽았다. 권위주의 문화가 문제라는 응답은 전년(36.9%)보다도 늘었다. 이밖에 '개인의 윤리의식 부족(25.4%)', '가해자에 대한 처벌 부족(18.1%)', '갑질을 유발하는 제도상 허점(13.5%)'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갑질 근절을 위한 정부 역할로 "정부와 민간이 협의체를 구성해 관리해야 한다(60.3%)"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24.0%)", "민간 자율 관리(13.1%)" 등이 뒤를 이었다.
김규화 알앤알컨설팅 팀장은 "정부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갑질 인식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은 "일상 속 갑질 문화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 민관합동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갑질 근절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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