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현지시간)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사이먼 래틀은 2023년 9월부터 5년 동안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의 수석지휘자 자리를 맡는다. 2019년 11월 심장병으로 타계한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후임이자 악단의 여섯 번째 수석지휘자다.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에서는 2023년까지 상임지휘자로 활동한 후 명예지휘자(Conductor Emeritus)로 임명될 예정이다.
교향악단들은 보통 신임 지휘자들을 뽑기 한두 해 전 수석지휘자 임명을 공표한다. 객원지휘자로 단원들과 호흡을 맞춰보고 협상에 들어가서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2019년 얀손스 사후 지휘자를 공석으로 뒀다. 2년간 물색한 끝에 래틀을 낙점한 것이다.
사이먼 래틀은 1999년에 베를린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 선출됐다. 2002년부터 임기를 시작한 그는 2018년까지 16년 동안 베를린필을 이끌었다. 재임동안 보수적인 베를린필을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온라인 플랫폼인 '디지털콘서트홀'을 구축해 악단의 수익 구조를 개선했고, 현대음악도 정기 음악회 레퍼토리에 넣는 등 혁신을 꾀했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 영국으로 돌아와 LSO를 이끌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도 온라인 생중계 공연에 나섰다. 조너선 헤이워드 등 젊은 지휘자들도 객원으로 발탁하며 새로운 실험에 적극적이었다.
래틀과의 이별에 영국 음악계는 당황한 입장이다. 런던에 새로 지을 공연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서다. 래틀은 2015년 LSO 객원지휘자로 위촉됐을 때 런던의 대표 공연장인 바비칸홀을 두고 "음향수준이 세계 표준에 뒤떨어진다"고 혹평했다. 그가 LSO 상임지휘자를 맡자 런던시는 4000여억원을 들여 공연장을 신축하겠다고 공언했다.
BBC는 래틀이 영국을 떠난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 째는 가족문제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어서다. 두 번째 이유는 영국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다. 래틀은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에 줄곧 반대해왔다. 코로나19 사태에서는 영국 클래식계에 대한 지원금이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영국과 달리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그를 환대하는 데 바쁘다. 울리히 빌헬름 BRSO 대표는 래틀 영입에 대해 "열정 넘치고 예술적 다양성을 포용할줄 알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래틀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영입 발표에 맞춰 래틀이 BRSO의 객원 지휘를 맡은 공연도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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