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학자 제랄드 브로네르가 쓴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특성이 도리어 시민을 ‘잘 속는 사람’으로 만들고,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뒤엉켜 진실을 가리는 현실을 분석한다. 프랑스어판이 처음 나온 것은 2013년. 저자의 지적은 9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한시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민주주의를 통해 시민들은 알 권리, 말할 권리, 결정할 권리를 쟁취했다. 누구나 자유롭게 실시간으로 공론의 장에 참여할 수 있는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한껏 꽃피워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은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멀다. 가짜뉴스는 메신저를 통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 나가고, 사실보다는 이면의 음모론이 더 큰 흥미를 끈다. 각각은 형편없는 근거일지라도 되는 대로 끌어모아 밀푀유 케이크처럼 켜켜이 쌓으면 그럴듯한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이 많은 게 다 거짓일 수는 없다’는 느낌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현상을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라 부르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은 믿는 것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꼬집는다.
이 같은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국민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가 음모론이나 가짜뉴스에 동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방대한 정보 속에서 작동하는 우리의 편향을 제대로 알고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 대신 진정한 ‘지식의 민주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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