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 롯데는 지난해 ‘뉴스’가 될 만한 사업을 만들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온라인 업체들의 공습을 막아내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감량하고, 임원의 90%가량을 40대로 교체하며 분투했다.
새해 들어 롯데가 재도약을 선언했다. 신 회장은 지난 13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각자의 업(業)에서 1위가 되기 위해 필요한 투자는 과감하게 진행하라”고 말했다. 위기 극복 차원이 아니라 업계 1위가 되기 위해 나서라는 주문이다. 롯데의 ‘인수합병(M&A) 본능’이 깨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신 회장은 이날 네 시간에 걸친 회의에서 CEO들을 질책하기보다 격려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해 초 회의 때 강한 질책이 있었고 이후 대대적 물갈이 인사가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신 회장은 CEO들에게 “과거의 성공 경험을 과감히 버리라”고 주문했다. “성장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목적인 회사에는 미래가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업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음에도 부진한 사업군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고 자문한 후 “전략이 아니라 실행의 문제”라고 자답했다. 그림만 그려 놓고,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는 얘기다. 유통 분야에서만 해도 롯데는 복합쇼핑몰을 가장 먼저 선보였지만 경쟁사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신 회장은 “혁신적으로 변하지 못하는 회사들은 과감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회장은 “위기 때 혁신하는 기업이 위기 후에도 성장 폭이 큰 것처럼 올 2분기 이후로 팬데믹(대유행)이 안정화에 들어갔을 때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14일 “차별화된 기업 가치를 창출한다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실행력 제고를 주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선 롯데가 적극적으로 M&A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 등 신사업 진출을 모색할 것이란 예상이다. 롯데케미칼은 2019년에 히타치케미컬 인수를 시도한 바 있다. 신 회장은 작년 10월 일본에서 귀국한 후 화학 계열사의 주요 사업장을 둘러보고, 11월 25일엔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의왕 사업장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만났다.
신 회장은 디지털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와 ESG(환경·사회적 가치·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전략적 집중을 당부했다. 그는 “사회적 가치는 기업 생존 및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사항”이라며 “규제에 대응하는 식의 접근보다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어떤 사회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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