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당선인은 현직 대통령의 대선 불복과 의사당 폭동 사태, 그리고 코로나19 대확산이라는 사상 초유의 정국 속에 오는 20일 임기를 시작합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외교·경제·안보·기후문제 등 트럼프 행정부 전반의 정책을 뒤집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이른바 ‘ABT(Anything But Trump·트럼프 빼고 전부 다)’ 전략입니다.
물론 바이든 당선인의 반중전선은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과는 다를 전망입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일방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당선인은 ‘동맹’과 ‘다자(多者)주의’를 강조합니다. 다시 말하면 동맹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반중전선에 함께 참여하라는 압박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바이든식 반중’은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난 12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게재한 ‘미국은 어떻게 아시아 질서를 강화할 수 있나’라는 제목의 공동 기고문에서 잘 드러납니다. 캠벨 전 차관보는 중국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군사 영역을 나눠 ‘투트랙’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는 “모든 사안에 초점을 두는 거대한 연합체를 구성하는 대신에 개별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 맞춤형 연합체를 추구해야 한다”며 경제 영역에서는 ‘민주주의 10개국(D10)’, 군사 영역에서는 ‘쿼드(Quad)’ 확대를 반중 전선의 두 축으로 제시합니다.
캠벨 전 차관보의 기고문을 눈여겨 봐야 하는 이유는 그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문을 실은 다음날 바이든 당선인은 그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에 내정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 직책은 여러 정부 부처에 흩어진 대중 정책을 통합하겠다는 차원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신설한 직책입니다. 대중 정책 뿐 아니라 아시아 관련 대외정책을 사실상 총괄하게 돼 러시아의 황제를 뜻하는 차르라는 단어를 붙여 ‘아시아 차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캠벨 전 차관보는 2009~2013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재직하며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피봇 투 아시아)’ 정책을 설계한 대중 강경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제안한 두 축 중 D10은 대표적인 바이든식 반중전선이 될 전망입니다. D10은 소위 ‘강대국 모임’이라 불리는 주요 7개국(G7)에 한국·호주·인도를 더한 연합체 구상으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해 5월 처음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앞서 바이든 당선인도 비슷한 연합체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3월 포린어페어스에 기고문을 보내고 “(당선되면) 첫해에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를 개최할 것”이라며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모여 민주주의 시스템을 강화하고, 민주주의에서 퇴보하는 국가들에 맞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D10의 형태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D10은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반중전선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공통 분모로 묶은 연합체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그동안 인권과 민주주의 등 미국이 그동안 지향해온 가치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방식의(트럼프 대통령 방식이 아닌) 외교를 펼칠 것이라 공언해왔습니다. 전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합해 반(反)민주적인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이에 한국도 일찌감치 참여 의사를 드러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미국 아스펜연구소 안보포럼에 화상으로 참석해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기간에 선언한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에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중전선 참여에 극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한국이 선제적으로 참여의사를 밝힌 것은 꽤나 이례적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회의체의 성격이 명확하게 ‘반중’이라 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참여 의사를 밝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라 분석합니다. 회의체의 성격이 명확해지기 전부터 참여하면 중국이 이것에 대해 나중에 문제 제기를 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명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이든 사람이 쿼드의 확대를 말합니다. D10, 혹은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는 무역·기술·국제 표준 등에 있어서 중국에 대항하는 연합체로 활용하고 중국의 군사적인 팽창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말하자면 쿼드를 ‘재활용’하겠다는 뜻입니다. 강 장관이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 참여 의사는 선제적으로 밝혔던 것과 달리 쿼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왔습니다. 강 장관은 쿼드의 확장판을 뜻하는 ‘쿼드 플러스’ 참여에 대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쿼드 플러스라는 단어 자체가) 일부 언론에서 ‘저널리스틱’하게 쓰기 위해 나온 말 같다”면서 “미국 스스로가 쿼드 플러스란 것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이죠. 이어서 “(미국이) 여기에 참여하라고 요청한 것도 없는 상황”이라 덧붙이며 쿼드 플러스 참여에 선을 그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미국 의회에서 한국이 이미 쿼드 플러스에 참여해왔다는 보고서가 나옵니다.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SESRC)의 연례보고서는 한국이 이미 지난 5월 쿼드 플러스의 첫 장관급 회담에 참여했다고 명시합니다. 보고서는 “주목할 만한 것은 (2020년) 처음으로 쿼드의 확장 형태인 쿼드 플러스로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다는 점”이라면서 “3~5월 사이에만 최소 세 차례 이상 화상 회담을 했고 5월 11일에는 최초의 ‘장관급’ 회담이 열렸다”고 밝혔습니다. 외교부는 당시 회담에 대해 “코로나19 대응 국제 협력을 위한 회의”라고 설명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비교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주한미군 감축 등 동맹 현안으로 인한 갈등은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인 지난해 10월 연합뉴스에 기고문을 보내 “대통령으로서 나는 우리의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지 않겠다”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동맹 관계는 특별하다는 바이든 당선인의 철학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하면 쿼드 참여를 회피하는 등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의 여지는 줄어들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동맹을 특별하게 본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바이든 당선인은 적어도 대외정책 분야에 있어서는 확고한 원칙주의자입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여러 차례 “나는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할 것”이라 말해왔습니다. 이는 지난 4년간 시시각각 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만 발맞춰온 대미(對美) 외교의 틀이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는 ‘기브 앤 테이크’ 원칙에 따라 미국이 생각했을 때 상응할 만한 걸 주기만 하면 됐다면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는 ‘동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지난 4년간 우리 외교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기에 과하게 의존해왔다는 점입니다. 특히 남북한 관계는 사실상 트럼프에 일임해 미·북 정상회담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도록 했고, 미·중 갈등 속에서도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적당한’ 스탠스만을 유지해왔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거세게 밀어붙일 반중 전선 참여를 거부하더라도 원칙에 대항하는 합당한 원칙을 제시해야 할텐데, 과연 우리 정부가 그러한 원칙을 갖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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