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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초 기업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연말 정기인사 이후 옮긴 사람, 합류한 사람, 남은 사람들이 한데 섞여 ‘적응 기간’을 거친다. 매년 벌어지는 일이지만 김상무 이부장은 늘 새롭다. 부쩍 많아진 ‘외부 출신’과 ‘여성’ 임원들 때문에 올해는 더 그렇다. 이들은 의례적인 ‘관행’과 ‘절차’에 의문을 제기하고, 소통 방식에도 변화를 주는 경향이 강하다. 조직의 간부인 김상무 이부장은 이 같은 변화의 한복판에 섰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안도는 잠시뿐이다. 빠르게 조직을 안착시키고 어떻게 해서든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연초 김상무 이부장의 ‘인사 후 적응기’를 들어봤다.
국내 대형 유통사의 박 팀장은 올해 자신과 동갑인 40대 중반의 상무를 새 상사로 맞았다. ‘까칠할 것’이란 우려와 다르게 박 팀장과 새로운 임원은 죽이 잘 맞는다. 박 팀장으로부터 업무방식을 보고받은 신임 상무는 불필요한 회의부터 다 없앴다. 결재는 웬만한 것은 생략하고 메신저로 하라고 했다. 그 덕분에 상무 눈치볼 일이 확 줄었다. 박 팀장은 “중요 결재 때마다 상무 기분을 살피곤 했는데, 요즘은 이런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없어서 좋다”고 했다.
외부에서 임원을 맞는 간부들도 요즘은 긍정적 평가를 많이 한다. 교육콘텐츠업체에 재직 중인 박 부장은 사장 주재 회의 때마다 사이다 한 캔을 들이켜는 것 같은 통쾌함을 느낀다. 회사가 사업 확장을 위해 영입한 컨설팅기업 출신 김 이사가 최고경영자(CEO)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서다. 박 부장은 “처음에는 김 이사의 직설적인 발언이 낯설었지만 그 덕분에 상급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히 의견을 내는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했다.
관가에선 민간 출신 국장들이 맹활약 중이다. 공직 외부에서 적격자를 찾는 ‘경력개방형 직위’를 통해 몇 년 전 중앙부처 고위공무원단에 합류한 김 국장은 취임 직후 “민간 전문가인 내가 할 일은 제도를 정착시켜 우리 국을 없애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국’은 기업 규제 입법을 위해 한시적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이다. 기업이 잘하면 사라질 조직이니, 제대로 일하고 팀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인력 확보를 중시하는 공무원 조직 특성상 김 국장의 말은 조직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김 국장의 바람대로 취임 후 이 국은 민간 기업과의 소통이 활발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국장이 조직에 새로운 자극이 된 셈이다.
국내 한 은행에 다니는 김 팀장은 ‘승진 궤도’에서 벗어난 차장급 동료 직원들을 마주칠 때면 불편하다. 김 팀장은 40대 초반에 팀장에 올랐다. 하지만 자신보다 서너 살 많은 차장급 팀원들이 자신을 상사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업무 지시를 해도 명확히 대답하지 않는다. 외부 사람을 함께 만난 자리에서는 자신을 ‘선배’로 지칭하기도 한다. 김 팀장은 “회사에서도 원활한 영업을 위해 차장급 직원에게 팀장 명함을 내주고 적절히 예우하라는 지침을 내려 서열을 정리하기가 어색해진 상황”이라며 “입사 후배가 상사 노릇을 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푸념했다.
정보기술(IT)회사에 근무하는 정 팀장도 한 살 많은 팀원과 일을 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팀장인 자신을 건너뛰고 상부에 직접 결재를 올리거나 나이를 운운하면서 팀 분위기를 어색하게 해서다. 정 팀장은 “하루빨리 어색한 관계를 끝내야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리더로서의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직 영입을 우려하는 김상무 이부장도 상당하다. 바이오회사 경영지원팀에 근무하는 김 상무는 최근 기업설명(IR) 담당 총책임자로 부임한 다섯 살 어린 이 전무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문제로 곤욕을 치른 회사 대표가 40대 회계사를 영입했는데, 바이오 분야에 문외한이어서 결재를 올릴 때마다 1시간 이상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 부장은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업무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을 임원 자리에 앉히는 것은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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