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가 기업인을 감옥에 밀어넣는 일 다시는 없어야

입력 2021-01-18 18:04   수정 2021-01-19 00:10

서울고법 형사1부가 어제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 씨 측에 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회삿돈으로 86억8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뇌물로 인정했다. 재판부가 양형에 반영하겠다며 제안해 만들어진 준법감시위원회도 ‘실효성 미흡’ 이유로 판결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 부회장이 재상고한다고 해도 이 판결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취지를 따른 것이어서 크게 바뀔 가능성은 낮다.

주목되는 것은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또다시 ‘묵시적 청탁’ 논리를 내세운 점이다. “피고인이 묵시적이나마 승계 작업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것이다. 묵시적 청탁은 1심 때부터 큰 논란을 초래했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으로 청탁한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심전심 묵시적 청탁은 있었다는 논리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심에선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고, 파기환송심에서 재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입증하지 못한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21세기판 ‘관심법’도 아니고, 명백한 증거도 없는데 사람 마음속을 어찌 알 수 있겠나. 정치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기업이 대통령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이런 식이면 여당이 추진하는 이익공유제도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을 것이다. 말로는 자발적인데 가이드라인까지 정해준다면 기업들은 압력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의 1호로 ‘적폐청산’을 내걸었다. 4년에 걸친 ‘이재용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도 여권과 일부 반기업단체들의 여론몰이가 끊이지 않았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2심 재판부 신상털이도 횡행했다. 법리가 아니라 정치 문제가 돼 버렸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세계적 기업의 경영자를 이렇게 처벌해 얻을 실익이 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 금융당국을 비판했다가 실종설·구금설이 나도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 사례만큼이나 해외에 후진적으로 비칠 것이다. 정치적 이유로 기업인을 감옥에 보내는 악순환을 끊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선진국가로 거듭나기는 요원하다. 이런 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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