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산업이 급히 변하는 이 시기, 한국 최대 기업에 리더십 공백이 생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는 소식에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우려를 제기했다. 삼성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다. 각 외신들은 삼성이 혁신 기회를 놓쳐 글로벌 반도체·스마트폰·전자 디스플레이 시장 등에서 입지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이 갈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굴기’를 꿈꾸는 중국에선 여러 매체가 “중국 기업이 삼성을 추월할 기회가 올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WSJ는 “중국 기업들은 낮은 가격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고, 애플은 최근 5세대(5G) 아이폰을 출시한 등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진 와중에 이번 결정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삼성은 인공지능(AI), 자동차 부품 등 각종 새 기술 분야로 진출을 가속화하는 중대한 시기를 겪고 있다”며 “이같은 움직임을 이끌어온 이 부회장이 수감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FT는 이어 “삼성은 세계 최대 반도체·스마트폰·전자 디스플레이 제조기업으로 한국 경제에 있어 중요성이 크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한국 경제에도 여파가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코로나19, 미국과 중국간 무역갈등, 모바일·반도체 시장 경쟁 심화 등 세계적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한국이 자국내 최대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감옥으로 돌려보낸다”며 “이 부회장의 부재는 삼성의 투자 전략을 지연시키거나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삼성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차세대 반도체 사업에선 대규모 투자를 통해 업계 선두인 대만 TSMC와 격차를 좁히려 하고 있고, 5G 무선통신 장비 시장에선 미국의 화웨이 제재를 기회로 점유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며 “차세대 주요 사업에 수십억달러 ‘베팅’을 하는 와중에 리더십 공백이 생겼다”고 썼다.
로이터통신은 “한국 경영계는 삼성그룹 경영권 공백 사태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전례없는 경제 불확실성과 전세계 보호주의 정책의 가속화가 이어지는 중이라 삼성의 주요 사업결정이 지연되면 한국 경제·산업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삼성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삼성전자만 해도 한국 전체 수출의 약 5분의1을 차지한다”며 “한국의 친기업 단체들은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삼성과 한국 경제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삼성이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도록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린 인물”이라며 “이런 프로젝트는 통상 리스크가 크고 장기 투자가 필요한 만큼, 그룹의 실질적 리더인 이 부회장 외엔 책임지고 끌어갈 인물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중국신문망은 "정치 스캔들에 휘말리는 것은 삼성 조타수의 숙명인 것 같다"며 "이 부회장의 수감으로 삼성 제국을 태운 거대한 배가 어디로 향할지 변수가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신문망은 또 "삼성의 기술 우위는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중국 업체들에게 시장을 한 발 한 발 잠식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대표 스마트폰 제조사인 화웨이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삼성전자보다 적지만 연구개발(R&D) 투자비의 비율은 더 높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화웨이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에서 삼성 휴대폰의 점유율은 1%대로 떨어졌고, 중국 내 공급망이 끊기는 일이 발생하면서 시장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신랑재경은 "이 부회장이 일상적 운영을 세 CEO들에게 맡겼지만 중대한 결정은 그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삼성그룹의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지켜봐야 한다"고 보도했다.
지에미엔(界面)신문은 "이 부회장이 옥중에서 대규모 투자나 기업결합 등 기업 장기 플랜을 기획하고 결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故) 이건희 회장 상속 문제에 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부담도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그룹과 폭넓은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기업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삼성전자에 반도체 소재를 납품하는 한 기업 관계자는 "주요고객인 삼성의 중장기 투자전략이 불투명해지면 우리도 사업전략을 세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도쿄=정영효 특파원/베이징=강현우 특파원 alway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