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자 프로골프 대회를 주관하는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의 강춘자 대표(65)는 지금도 싱글 스코어를 적어낸다. 실력 유지를 위해 선수 때도 열심히 하지 않았던 체력 관리에 공을 들인다. 대회 후원사 VIP들의 골프 선생님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지난주 서울 삼성동 KLPGT 사무실에서 만난 강 대표는 “경영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어 발품을 팔고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레슨을 해도 선생이 잘 쳐야 설득이 되지 않겠나”라며 활짝 웃었다.
‘대한민국 1호 여자프로골퍼’인 강 대표는 ‘K골프’의 토대를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1988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로부터 완전 독립한 뒤 그는 선수이자 행정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그는 1987년 고(故) 구옥희 등의 동료들과 함께 셋방살이를 하던 KPGA에서 나오며 받은 5000만원으로 삼성동 대웅빌딩 2층에 자그마한 사무실을 차렸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KLPGA는 세계 3대 투어로 성장했다. 올해 여자 투어는 31개 대회, 총상금 약 280억원 규모로 열린다. 지속적인 성장의 비결을 묻자 강 대표는 “스폰서를 만나고 골프와 어떻게 연결고리를 찾아야 할지 항상 고민했다”고 말했다.
KLPGA투어에서만 10승을 거둔 강 대표의 ‘승부사 기질’은 그의 경영 방식에서도 묻어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지난해 5월. KLPGA투어는 세계 주요 투어 중 처음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대회 개최를 주저하는 스폰서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강 대표가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던 KLPGA는 첫 대회를 자체 예산을 들여 개최했다. 되도록 많은 선수에게 상금이 돌아가도록 커트 탈락 없이 총상금 30억원, 출전 선수 150명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로 제42회 KLPGA챔피언십을 열었다.
강 대표는 “여론의 뭇매를 맞아도 내가 총대를 메고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며 “대회가 없어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보고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KLPGA는 50페이지가 넘는 ‘코로나19 대응 통합 매뉴얼’을 앞세워 철통 방역을 유지했고 한 명의 확진자 없이 시즌을 마쳤다. 당시 외신들은 현장을 취재한 뒤 ‘K방역’이라며 극찬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등에선 KLPGA에 매뉴얼을 공유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에는 ‘대한민국 스포츠산업대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강 대표는 “어려운 결정을 함께 내린 김상열 KLPGA 회장님과 믿고 따라준 경영진, 회원들 덕분”이라며 “협회의 위상이나 방역에 대한 무형적 가치를 고려하면 회사로서도 엄청난 흑자를 낸 셈”이라고 했다.
강 대표는 지난해 투어를 운용하는 협회 자회사 KLPGT의 공동대표로 선임되면서 전문경영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수석부회장직 때보다 두 배는 더 바빠졌다”고 했다. 강 대표는 “부회장으로 있을 때와 달리 전문경영인이 된 후로 책임감이 더 생겼다”며 “아직 대회 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회 수를 늘리고 실적을 더 높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강 대표의 또 다른 꿈은 KLPGA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강 대표는 “미국의 마스터스나 영국의 브리티시 오픈처럼 KLPGT가 K골프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도록 임기 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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